“대구? 거기 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지 않나?”
외지인들은 흔히 대구를 두고 이런 이미지를 떠올린다. 현대 정치의 보수 인맥 TK 세력 배출, 자동차부품/기계/섬유 등 지역경제를 견인해온 굴뚝 산업, 대구백화점/대구은행/매일신문/다빈치 커피/하바나 커피 등 특히 강한 지역 브랜드 등이 어우러져 형성된 고정관념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대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진짜 특징은 강력하고 건강한 청년 문화다. 대구는 그 보수적인 이미지와 달리 지역 맛집 문화를 선도하는 젊은 도시다. 맛집 가이드 ‘블루리본’의 2014년 자료에 따르면, 대구의 중심 상권인 중구와 수성구는 각각 64개, 31개의 맛집을 보유해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시군구 맛집 순위 12위와 30위에 올라있다.
대구 전역의 맛집 수 133개도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 6대 광역시 중 부산에 이어 2위이고, 시민 1인당 수는 부산, 대전 다음으로 3위다. 특히 젊은 층이 즐기는 양식 부문에서 대구는 강하다. 2014년, 총 14개의 대구 양식당이 블루리본에 등재되며, 16개가 등재된 부산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대구는 또한 새로운 외식 트렌드의 발상지다. 이 도시가 수출한 대표적인 외식 상품 중 하나가 ‘치맥(치킨 + 맥주)’이다. 대구는 1970년대부터 양계장과 도계장이 많아 닭고기 소비가 높은 지역이었다. 이러한 치킨 가공 산업의 발달과 닭고기 소비문화는 1980년대 이후 교촌치킨, 멕시카나, 페리카나, 땅땅치킨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를 배출하는 발판이 됐다.
1980년대 치킨 프랜차이즈의 뒤를 이어 최근에도 대구의 다양한 외식 브랜드가 전국 각지로 뻗어 나가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탈리안 음식점 서가앤쿡, 미즈컨테이너, 허디거디, 나인로드 피제리아라든지 커피전문점 다빈치커피, 하바나커피, 매스커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브랜드는 개성 있는 음식 외에도 두 명이 한 메뉴를 주문하는 ‘2인 메뉴’,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훈남 마케팅’, 포장 커피 위주의 매장 운영 등 독특한 영업 방식으로 전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었다.
지역 젊은이들은 또한 개성 있는 소규모 옷가게 창업으로 패션도시 대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성로의 ‘야시골목’을 비롯해 대구 시내 곳곳에는 특색 있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장식된 작은 옷가게들이 즐비하다. 덕분에 대구는 12년째 대구패션페어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그 저력을 뽐내고 있다.
대구는 어떻게 이리 강한 청년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을까?
25개 대학의 27만 대학생 인구, 청년 창업 인력의 해외 유학 경험, 패션산업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인프라 등을 꼽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단일 도심 경제야말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대구는 대도시 중 예외적으로 단핵 도심 체제를 유지한 도시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중심지가 분산된 다른 도시와 달리 대구에서 ‘시내’는 동성로 한 곳을 의미한다. 상권 구조로 보면 대구는 "도시 고밀도 개발을 통해 지속 가능한 도시공간 형태를 지향하는" 콤팩트 시티(압축도시) 모델에 가깝다.
이렇게 한곳에 집중된 상권은 대규모 유동인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전통시장, 명품거리, 공구거리, 카페거리, 근대문화 등 다양한 도시 문화의 체험과 융합을 가능하게 한다. 외부로 수출한 지역 브랜드의 대부분이 동성로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단일 도심의 소상공인 집적이 창조적 청년 문화를 형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도심 문화의 또 하나의 축은 골목길이다. 시민들이 그 수가 1,000여 개가 넘는다고 일상적으로 말할 정도로 골목길이 많다. 그중 근대문화거리, 김광석길, 안지랑 곱창골목 3곳이 2015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대표 관광지 100곳'에 이름을 올렸다.
골목길의 경제적 가치는 관광 자원으로 그치지 않는다. 골목길은 매력적인 도시문화를 창조하고 이를 통해 미래 도시산업을 견인할 수 있는 창조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는 경제적 자본이다. 도심을 기점으로 대구만의 색깔을 가진 다양한 지역 기업들이 늘어나면 도시와 산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
젊은이만이 도심에 모이는 것이 아니다. <골목길을 걷다, 대구를 만나다>의 저자 황희진 기자는 청년과 장년이 각기 따로 모이는 도심의 두 골목을 소개한다:
입구에 접어들 때부터 설렘과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골목을 대구에서는 두 곳 들 수 있다. 밤이면, 특히 주말 밤이면 젊은이들을 가슴 뛰게 만드는 ‘현재 대구 제일 번화가’ 동성로 로데오 골목과, 젊은 세대 못지않게 밤을 불태울 줄 아는 노년들의 유흥 집결지인 ‘왕년 대구 제일 번화가’ 향촌동 골목이다. 수십 년 차이 나는 향유층을 두고 경계 지어지는 두 골목은, 실은 같은 세월 속에 있다. 가슴 뛰는 일에, 노소(老少)가 어디 따로 있나. (p 208)
그렇다면 대구의 발전 과제는 명확해진다. 오늘의 영광을 있게 해 준 단일 도심과 골목 문화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도시 전체를 보면 대중 교통망과 도보 접근성 확대로 도심과 동대구역 주변, 북구 제일모직 공장터 등 새로 형성되는 부도심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보와 자전거를 포함한 대중교통 인프라 또한 도심 중심으로 친환경 생활을 추구하는 콤팩트 시티로 계속 발전하는데 필요한 기반이다.
경제 시스템적으로는 기존 산업, 지역 대학, 테크노파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연결해 도심 상권의 창조적 역량으로 신성장동력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지역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관건은 대구의 선택이다.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 따라 근대적인 도시 발전 모델만을 고집한다면 산업도시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도심 문화, 지역 브랜드, 골목 상권 등 청년 세대가 개척하는 탈근대 자원을 십분 활용한다면, 대구는 청년 문화와 창업 중심의 창조도시로 화려하게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 2016
* 골목길 경제학자 대구 강연
행사 - 청년 x 골목경제 공감 토크
일시 - 3/8(목) 14:30
장소 -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2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