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디자인, 지역 살리기의 필수조건
최근 정부는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문화와 접목하여 재생하는 '문화가 있는 산업단지 조성' 사업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 등 3개 부처가 협력하여 추진하는 이 사업은 산업단지 내 유휴시설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도입함으로써 산업단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춘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지역 재생의 성공 사례를 살펴보면, 문화 콘텐츠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성수동, 문래동, 연남동 등 쇠퇴한 공장, 창고, 시장이 밀집했던 지역들이 예술가와 젊은 창업가들의 실험 무대로 변모하며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 대표적이다.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곳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 제주도는 친환경, 로컬 문화를 내세워 귀농·귀촌 인구와 관광객을 끌어들였고, 양양군은 서핑을 매개로 젊은 서퍼와 창업가들의 성지로 부상했다. 새로운 문화 콘텐츠 발굴이 쇠퇴한 지역에 활력을 되찾아준 셈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유통공간에서도 감지된다. 백화점의 경우 여의도 '더현대 서울'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단순한 쇼핑공간을 넘어 도시 문화를 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휴식과 체험을 강조한 공간 설계, 팝업스토어와 문화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다.
신도시 역시 문화적 재생을 모색 중이다. 세종시는 상가 공실률 해소를 위해 도심 중심가로에 창의적인 건축물과 디자인을 도입한 공간 재생을 시도하고 있다. 창작 클러스터, 예술가 레지던시 등 소프트웨어적 지원도 병행함으로써 문화 생태계 조성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문화 콘텐츠 도입만으로 지역을 재생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 즉 크리에이터의 유치가 관건이다. 단순히 문화 시설을 조성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 실험이 가능한 건축과 디자인 환경을 갖추는 것이 이들을 유인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홍대, 서촌, 해방촌, 성수동 등 크리에이터들이 모여든 지역은 하나같이 독특한 건축 양식, 오래된 골목길, 산업 유산 등 기존의 건축 자원을 창의적으로 디자인한 공간 재생이 돋보인다. 제주 원도심의 개성 있는 건축물들, 양양 서핑 커뮤니티를 품은 서프숍과 골목길도 새로운 지역 문화를 만들어가는 거점이 되고 있다.
문화 재생 성공 사례는 지역의 정체성과 특색을 반영한 도시 재생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역사, 생활상, 산업 기반 등을 담은 건축 자산을 발굴하고 이를 새로운 문화 콘텐츠 창출로 연결하는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노후 산업단지는 물론, 쇠퇴한 원도심과 신도시 등 문화적 재생을 모색하는 모든 지역이 직면한 과제다. 새로 건설하는 산단과 신도시도 크리에이터를 유치할 수 있는 건축과 디자인을 공급해야 성공할 수 있다.
지역 재생의 시대, 물리적 지원보다는 문화적 지원이 더 시급하다. 1970년대 농촌을 시멘트와 철근으로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지역의 농업 생산력을 높인 것이 새마을운동이라면, 이제는 건축과 디자인을 공급해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지역의 문화 창출 능력을 제고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지역 자원과 공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고유한 콘텐츠로 연결하는 작업, 그리고 크리에이터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국 모든 쇠퇴 지역에서 문화가 있는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