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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n 13. 2024

의사 집단행동의 이해

의사 집단행동의 이해


현재 의료계 사태는 사회과학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의사 정원이 필요하다 아니다의 논쟁을 떠나, 사회과학자에게는 의사의 집단행동 자체가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모든 전문직은 전문직 '정원'에 민감하다. 공급을 제한해야 서비스의 가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는 특별하다. 유달리 민감하고, 더 중요한 것은 정원 제한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까지 불사한다. 변호사협회가 로스쿨 정원을 놓고 파업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의사 파업을 반대하는 여론은 일관되게 의사들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며, 그들의 행동을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의사의 행동을 단순히 이기심으로 치부하는 것은 피상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의사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집단행동이론(Theory of Collective Action)'은 유용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이 이론은 개인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되는 조건과 과정에 주목한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어떻게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집단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행동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구체적으로, 집단행동이론은 집단행동 유인과 집단행동 공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단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클수록 집단행동을 감행할 유인이 크다. 집단행동 가능성은 또한 그 비용의 영향을 받는다. 비용이 작을수록 공급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한 퍼즐은 세 가지다:  

왜 의사는 다른 전문직에 비해 정원에 그렇게 민감한가?

왜 전공의가 대규모 집단행동의 선봉에 섰는가?

왜 의대가 아닌 대학병원이 집단행동을 주도하는가?


최근의 논의를 통해 첫 두 가지 퍼즐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의료수가 체계가 정원 민감성의 주요 원인이며, 열악한 전공의 처우가 그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설명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필수의료 수가 인상, 전문의 중심 병원 운영 등 다양한 개선책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퍼즐, 즉 대학병원이 의대 정원 관련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본 글은 의료 사태의 핵심에 '의대와 대학병원의 통합 운영'에 있다고 보며, 향후 의료개혁의 중요한 의제로 '의대와 대학병원의 분리'가 다뤄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원 민감성에 대한 이해

먼저 의사의 집단행동 유인이다. 의사가 확대를 막으려는 '정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의사 전체 정원이고, 또 하나는 의대 정원이다. 의사가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의사 전체 정원을 늘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변호사 정원 증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놓고 집단행동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정원 증원 저지의 혜택이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변호사 리더, 즉 최상위 변호사는 정원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소득을 지킬 수 있다. 그들에게는 정원 규제의 혜택이 크지 않은 것이다.


의사는 변호사와 달리 정원 규제의 혜택을 균등하게 받는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정보 비대칭성과 현행 의료수가 체계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의사는 실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쉽지 않다. 주 고객인 환자가 의사의 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울뿐더러, 의료수가가 균일하게 책정되어 있어 가격으로 능력을 차별화하기 어렵다.


변호사는 고객에게 실력을 입증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차별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수가 규제로 가격 결정권이 없는 의사와 달리 변호사는 가격을 직접 결정한다. 일반 변호사보다 고가의 수임료를 청구할 수 있는 대형 로펌 변호사가 좋은 사례다.


의대 정원에 대해서는 대학병원 의사와 일반 의사의 입장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둘 다 의사 전체 정원으로 이어지는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하지만, 대학병원 의사가 더 반대하는 이유는 교육과 수련 부담이다. 대학병원 의사는 의대생과 전공의의 교육과 수련을 담당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대학병원 의사의 교육과 수련 부담, 특히 수련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현재 대학병원 의사가 의대생 교육에 연간 4~6시간을 할애하지만, 전공의 수련은 매일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시스템하에서 정원 증원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학병원 의사의 입장이다.


전공의 단체행동에 대한 이해

집단행동 유인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집단행동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내부 구성원 간의 협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의료계가 집단행동에 나선다는 것은 공급 비용, 즉 내부 협력 문제를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전공의와 대학병원의 구심점 역할이 크다.


전공의가 이번 의사 파업을 주도하는 현상은 대학병원 구조의 문제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공의는 수련을 받는 동시에 병원 업무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의사 집단이다. 그러나 전공의의 법적 지위는 불분명하고 처우도 열악한 게 현실이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수련 과정에서의 갑질과 부당 대우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전공의에 대한 과도한 업무 부담과 열악한 처우는 오랜 기간 지속돼 온 구조적 문제다. 저비용 인력에 의존하는 병원 운영 관행이 이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과중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확충은 요원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의대 정원 확대는 향후 전공의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수련 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또한 파업에 동참할 경우 전공의가 감수해야 할 손실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도 이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뒷받침한다. 전공의는 고용 안정성이 낮고 향후 개업 등을 통해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여기에 수련 기간 중 자신들의 권익을 보다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기회로 이번 사태를 활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젊은 의사 세대의 높아진 권리 의식도 주목할 만하다. 기성 의사 세대와 달리 전공의들은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의료계 문화에 순응하기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 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그간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변화의 동력으로 이번 집단행동을 활용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전공의 문제는 비단 의대 정원이나 수련 환경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불합리한 의료 전달체계, 영리 추구에 경도된 병원 행태 등 의료계의 구조적 모순이 응축된 영역이기도 하다.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헌신을 당연시하는 인식에서 벗어나, 미래 의료를 이끌어갈 인재로서 전공의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용인세브란스 병원의 전공의 제도 개혁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 이 병원은 전문의 중심의 진료 모델을 도입하여, 특히 입원의학과에서 전담 전문의가 환자 관리를 맡아 의료의 질을 높이고 있다. 이 모델은 전공의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전문의가 전공의 교육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전공의의 권익과 교육의 질을 동시에 향상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전공의와 전문의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구조다.


대학병원의 집단행동에 대한 이해

현재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 파업을 주도하는 세력은 대학병원이다. 의료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결집력을 가진 대학병원이 의대 정원 반대를 선도함으로써 의료계 전체의 행동력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가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내부 협력 문제를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병원은 전공의 수련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인 동시에 의대 운영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법적으로는 의대와 병원이 분리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의대가 재정과 인력 면에서 대학병원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의대생 등록금만으로 교수 인건비와 교육 시설을 충당하기 어려워, 의대는 대학병원 소속 임상의사를 교수로 임용하는 구조를 취하게 되었다. 반면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는 의대와 대학병원의 운영이 보다 분리되어 있다. 대학병원과 제휴하되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의대가 많고, 의대 교수 임용도 대학병원과는 별도의 기준으로 이뤄진다.


2024년 6월 현재 각 대학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주요 의과대학의 전임 교원 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1,086명, 도쿄대학 의학부 256명, 하버드 의과대학 260명이다. 서울대 의대의 교원 수가 현저히 많은 이유는 임상교실 교원 887명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대학병원 의사들을 대부분 교수로 임용하는 특수한 제도를 반영한다.


이러한 의대와 병원의 밀접한 연계 구조에서, 의대 정원 확대는 대학병원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의사 수 증가로 인한 경쟁 심화뿐만 아니라, 병원 예산으로 의대를 운영하는 구조상 정원 확대에 따른 교육비용 증가도 병원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공의 수련 부담 증가로 인해 대학병원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한국의 의대와 대학병원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분리 운영된다면, 대학병원이 의대 정원 문제에 현재와 같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줄어들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부담을 의대가 자체적으로 감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에서 의대 정원 문제를 둘러싼 대학병원의 강한 반발은 의대와 대학병원의 '공동 운영'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대와 대학병원의 공동 운영 관행은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민간 병원과 대학의 통합이라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한다. 2014년 조선일보 김철중 전문기자는 수도권의 한 병원이 강원도 대학의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 70명이 그 대학 의대의 교수로 임용된 사례를 지적한다. 대학병원과 의대를 운영하는 대학재단이 두 기관을 통합 운영하는 것을 넘어서 대학과 관련 없는 민간병원이 대학과의 제휴 관계를 통해 임상 의사 전원을 교수로 임용하는 사례다. 의사가 교수로 임용되면 사학연금제도에 따라 퇴직 연금을 수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의사의 교수 임용 관행은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의대 정원 문제는 의료계 내부의 복합적인 모순이 얽혀 있는 사안이다. 단순히 정원 숫자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기 어렵다. 합리적인 수가 체계 마련, 수련 체계 개혁, 의대와 병원 간 관계 재정립 등 종합적인 처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의대 정원 문제와 관련된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집단행동이론은 유용한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 이 이론을 통해 의사와 변호사의 집단행동 차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의사는 의료수가에 따른 가격 결정권이 없고, 열악한 처우에 불만이 큰 전공의 집단이 존재하며, 의대와 병원의 공동 운영으로 의대에 대한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변호사는 의사와 달리 실력에 따라 가격을 차별화할 수 있고, 의사의 전공의에 상응하는 수련생 집단이 없으며, 로스쿨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의사 집단은 파업을 통해 정원 규제의 혜택을 얻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와 실행력을 갖추고 있으나, 변호사 집단은 파업을 통한 정원 규제 혜택 확보에 한계가 있고 파업 시 구심점 부재로 파괴력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집단행동이론은 의사 파업 방지를 위한 정책 방향도 시사한다. 의사에게 일정 부분 가격 결정권을 부여하고, 전공의의 처우를 개선하며, 의대와 대학병원의 운영을 분리하는 것이 의사 파업의 가능성을 낮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는 상당한 재원이 소요되는 과제이지만, 한국 의료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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