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에서 민희진까지

by 골목길 경제학자

#크리에이터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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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에서 민희진까지


최근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는 한국 사회가 창작자 중심의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 전환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며, 앞으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크리에이터 중심 사회에 대한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출발점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태지는 기존 연예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아티스트로서의 주체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행보는 이후 K-Pop의 성장과 한류 확산의 토대가 되었다.


서태지는 한국 대중문화 지형에 크리에이터 중심 패러다임을 도입한 선구자였다. 그는 당시 횡행하던 '노예계약'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맞섰으며, 자신의 음반 판매량을 바탕으로 유리한 계약 조건을 관철시켰다. 이는 다른 가수들에게도 선례가 되어 아티스트의 권리 신장에 기여했다.


또한 서태지는 2001년 서태지컴퍼니를 설립함으로써 아티스트 주도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음악적 결정권과 수익 배분에서 아티스트의 주체성을 높이는 혁신적 사건이었다. 아울러 그는 방송국과의 관계에서도 변화를 이끌었는데, 방송 활동을 자제하면서도 음악적 신념을 굽히지 않고 대중적 인기를 이어갔다.


이처럼 서태지는 기획사와 방송국 중심의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산업 구조의 민주화와 선진화를 위한 동력을 제공했다. 그의 행보는 이후 등장한 뮤지션들이 음악적 정체성을 당당히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서태지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아티스트 주권 시대의 서막을 연 선구자였던 셈이다.


서태지 이후에도 아티스트 주권을 향한 도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90년대 중후반 홍대 클럽 씬을 중심으로 펼쳐진 인디 음악의 부흥이 그 한 예다. 수많은 인디 밴드들이 드럭, 재머스, 롤링 스톤즈, 프리버드 등의 클럽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들은 주류 음악 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홍대라는 장소성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자유로운 창작 정신과 독립성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소위 '힙합 파문'으로 상징되는 한국 힙합의 붐이 일어났다. Dynamic Duo, Epik High, Leessang 등 언더그라운드에서 출발한 힙합 아티스트들이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아이돌 음악과는 차별화된 음악적 정체성으로 주목받았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자이언티, 크러쉬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음원 사이트를 통해 직접 음원을 발매하거나 자체 레이블을 세우는 등 독자적인 행보를 보였다. 박재범은 JYP 엔터테인먼트를 탈퇴하고 독립 레이블 AOMG를 설립하며 아티스트 주도의 음악 활동을 펼쳤고, 이는 대형 기획사 중심의 산업 구조에 일종의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역시 아티스트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아티스트에게 높은 자율성을 보장하고 그들의 창의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멤버들이 작사, 작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음원 플랫폼 시대를 맞아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유통 환경의 변화로 개인 창작자들이 직접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면서,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들이 쏟아지고 있다. 범 홍대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BANA와 같은 신예 뮤지션들의 음악에서도 자유로운 창작 정신과 독립성의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불거진 민희진 사태는 서태지가 30년 전 시작한 전쟁의 연장이다. 그녀의 행보는 창작자 대 기존 시스템의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민희진은 아티스트의 음악적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서태지가 아티스트의 주체성과 권리를 위해 싸웠다면, 민희진은 그 정신을 계승하여 오늘날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로의 전환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창작자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노력의 과정이다. 법과 제도의 정비, 사회적 인식의 변화, 그리고 창작자들의 자각과 연대가 필요하다.


서태지에서 민희진으로 이어지는 아티스트들의 도전은 우리 사회가 창작자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때로는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들의 행보는 사실 우리 모두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다양한 창작자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가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우리 각자가 일상의 자리에서 그 변화에 동참할 때, 진정한 의미의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로의 전환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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