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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Jan 28. 2018

파혼 6개월 후에 찾아온 평온

첫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들만 고집을 부린 건, 물론 아니었다. 나는 내 인생에 결혼이 최우선이면 안 될 것처럼 굴었다. 가족들 앞에 오빠를 소개시키기 전에, 한 번 따로 데리고 오라는 아빠의 말에 안 된다고 대답했다. 나는 결혼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참고로 내 직업은 영화와 관련된 일이 전혀 아님을 밝혀둔다.)

 

두 번째(?) 결혼을 준비하면서, 파혼에 영향을 미친 부모님들의 고집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저 일화를 생각했다. 보리야, 너도 참 이해 안 되는 인간이었어. 결혼이라는 것을 앞두면 다들 좀 그러나봐.





파혼 이후에 다시 결혼을 결심하고, 어른들에게 알렸다. 모두들 반기면서도 얼떨떨한 눈치셨다. 그리고 첫 번째보다 훨씬 마음을 내려놓으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드디어 타협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은 아빠 뜻대로. 상견례는 양가 부모님만 참석하고, 그러나 각서는 없이. 날짜는 엄마의 손에 맡겼다. 일요일 낮이라는 괴상한 시간이 내 눈 앞에 당도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 대신 나머지 일들은 모두 일사천리였다. 우리는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추리고 가장 심플하게 준비했다. 상담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양가 부모님께 동일한 액수의 예단과, 옷을 한 벌씩 지어드리기로 했고.


우리 부모님께는 200만원을, 오빠네 어머니와 아버지께는 각각 백만원씩을 드렸다. 아빠에게는 양복을 맞추시라고 돈으로 드렸고 나이가 많으신 아버님은 양복집에 따라가 옷을 맞춰드렸다. 아버님은 아버님만의 스타일이 있으셔서, 양복집에서 언성을 높이시면서 한 시간 동안 원하는 스타일을 내 달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 결혼, 정말 해도 되는걸까. 이제 다시 엎기엔 정말 곤란한데... 골치가 지끈지끈 아팠다. 양복에 벨트에 내복까지 해드리면서 정작 나는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한복집에 가면서도 똑같았다. 좋은 감으로 한복을 해드리고 밥까지 사드리면서 나는 기분이 좀 묘했다. 어머니는 한복집 앞에서 근데, 예물이나 이런 건 안 해도 되겠냐. 라고 물으셨고, 나는 괜찮아요, 어머니. 이미 오빠가 해줬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건 함께 돈을 모아 산 커플링, 서비스로 나오는 다이아목걸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목걸이를 안 받으면 10만원을 빼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친정에 자랑할 요량으로 그냥 달라고 했다. 오빠는 양복에 셔츠에... 아빠가 시계까지 해주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나는 악세사리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못내 서운했다. 그건 내가 환대받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모두 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 예단과 예물에 대해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서로의 부모님에 대한 어떤 기분 나쁜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오빠는 8천만원을 해왔고 나는 내가 모아둔 돈 2천만원에 친정에서 보태주신 2천만원 정도를 들고 왔다. 어떠한 지원을 모두 모아도 내가 가져온 돈은, 오빠가 모아온 돈의 1/2 밖에 안 됐다. 더군다나 오빠는 청소기를 뺀 어떤 것에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청소기는 오빠의 말을 들을 것을 그랬다..)


내가 하고 싶다는 커플링에도, 우리 엄마가 받아 온 날짜와 우리 아빠가 고집하는 예식장에도, 우리 아빠가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데려간 아빠의 페이버릿 양복 브랜드에도! 그냥 모두 좋다고 했다. 덕분에 오빠는 고달팠겠지만 나는 이렇다 할 갈등 없이 편안하게 보냈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바람까지 좋을 순 없는 건데, 산도 물도 좋은 것만으로 이미 넘치게 아름다운 곳인데. 욕심 많은 나는 기어코 바람까지 내가 원하는 습도를 머금고, 원하는 방향으로 불어주길 바랐다.


그 어린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크고 있다. 참 철이 없지, 철이 없구나. 그래도 그 때를 생각하면서 귀엽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나의 부족함을 어여쁘게 여길 수 있게 되면, 타인의 부족함도 어여쁘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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