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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Feb 01. 2018

파혼 이후, 회복의 시간

나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불안

그 해의 3월은 나에게는 봄이었고, 오빠에게는 겨울이었다.


눈에 띄게 침울해진 오빠를 보면서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이러다 우리가 헤어지는 게 아닐까, 무섭기도 했다. 나는 참 쫄보였다. 결혼할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오빠와 헤어질 자신도 없었다. 모든 상황을 다 휘저어 놓았으면서 고통에서는 쏙 빠지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는 싶었지만 갈등을 조율하고 싶지는 않았고, 오빠랑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고통을 어루만져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귀찮고 피곤한 일이니까. 대신 나는 떼를 쓰는 방법을 택했다. 왜 내 마음대로 해주지 않아요? 왜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요? 왜 나한테 이걸 요구하는 거예요?


침울해진 오빠를 보면서 상담 선생님은, 오빠가 참 힘들겠다고 내가 참 얌체라고 하셨다. 얌체라는 단어를 들으니까 흐릿했던 상황이 명확해졌다. 아,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열매만 쏙 먹고 싶은 거구나. 파혼하고 내내 나는 오빠를 괴롭혔다. 오빠, 내가 파혼하자고 한 건 다 아버님 때문이야. 우리 엄마 아빠 때문이고 어머님 때문이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유부단해서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오빠 때문이야. 그런데, 왜 나는 나의 문제도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는 시댁이라는 문화와 가부장제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 이혼한 시부모님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복잡하게 살았지, 도대체 어떻게 살면 저렇게 가난할 수 있지, 아들 결혼식에 어떻게 한 푼도 안 내놓고 도리어 용돈을 올려달라고 할 수 있지, 왜 저런 촌스러운 가발과 촌스러운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지, 왜 처음 만난 한정식집에서 남은 반찬도 아닌 남은 밥을 비닐에 싸달라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왜 나의 시부모님이 될 저 분들은, 결과적으로 적당히 교양있고 자상하고 부유하면서도 쿨한 시댁이 아닌거지.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나의 부모님들과 오빠의 부모님들을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타인은 나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잊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 마음에 들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닌데, 나는 내가 세워둔 100점짜리 점수표를 들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에 체크 표시를 하면서 점수를 깎고 있었다. 아쉽게도 총점이 90점에 달하지 못하네요. 이번 결혼은 무효입니다. 뭐 이런 것처럼.


그 때는 결혼이라는 걸 생각하면 암담했다. 신혼여행까지는 어찌어찌 행복할 것 같은데, 그 뒤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왠지 모르는 어둡고 불길한 기운이 그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을 낳으라는 압박, 우리 집을 불쑥불쑥 찾아오는 시부모님, 비아냥대면서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수많은 말들. 나는 아직 결혼을 경험해보지도 않고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 불안이 나를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게 했다.


내 불안을 듣던 상담 선생님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과제를 하나 내주셨다. 결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무섭고 불안한 것들을 담아 8페이지 짜리의 책 한 권으로 만들어 오라고 하셨다. 만들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불안들이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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