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0일

"나와 장마"

by 리움

비가 많이 온다. 눅눅한 공기가 집 안에 가득하다. 제습기를 돌리고 드디어 에어컨을 틀었다. 장마가 왔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눅눅하고 습하고 어둡다. 그렇지 않아도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비가 오면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침대에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데, 비가 오면 침대에서 더욱 일어나고 싶지 않다.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고 싶다. 빗소리에도 비에 젖는 것만 같다.


폭우에 대한 기억이라면, 몇 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 폭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아마 내가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집에 돌아오지 않은 동생을 찾기 위해, 무릎까지 쏟아지는 비를 뚫고 돌아다녔었다. 비가 그친 다음에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미술학원에 있었다. 나이가 어린 동생은 아직 다니지도 않던 학원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넉살이 좋은 친구다, 내 동생은.


그리고 이것도 아마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친구를 따라 친구네 시골집에 놀러 갔을 때, 엄청난 폭우에 불어난 개울인지 강인지, 하는 물에, 돼지가 떠내려 오던 걸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불어난 물이 주변 집들을 쓸고 내려왔던 것 같은데, 장롱 같은 것도 있었고, 소쿠리 같은 것도 있었고, 가장 충격적인 건, 떠내려 가던 돼지의 울음소리와, 그 돼지를 잡으려던 동네 아저씨들이었다. 그때가 돼지 실물을 처음 본 날이었으니, 아마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고, 그리고는 계속 맑은 날이 지속되어, 사태 수습도 빠르게 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비에 대한 딱히 나쁜 기억도 없는데, 왜 비를 싫어할까? 그 눅눅함이 싫은 걸까? 비가 내리는 날 특유의 우중충함이 싫은 걸까?


안타깝게도 내 생일은 항상 장마 기간 한 중간에 있었다. 신기하게도 장마 기간 한 중간에 있는 생일이지만 비가 오는 날이 별로 없었다. 이상하게도 비가 피해 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맑은 사람이라는 진담을 농담처럼 자주 하는지도 모르겠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처럼 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또는 비가 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날들이 지속되면,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지 않나? 비에 젖은 먼지처럼, 바닥으로 축 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이슬에 젖으면 푸른 냄새를 뿜는 나뭇잎도, 장마에는 숨을 죽이지 않나? 하늘을 누비며 재잘거리는 새들도, 장마에는 젖은 날개깃을 움츠리지 않나?


온 세상에 빗소리가 가득하다. 빗소리가 온 세상을 품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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