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 '아, 몰라' 상태

2025년 11월 18일

by 리움

뭔가를 하고 있는데, 진도는 안 나가고 시간은 가고, 충만하던 의지도 사그라들고, 그러다 보면, 다 놓고 싶을 때가 온다. 일명 '아, 몰라' 상태. 대충 빨리 끝내버리자, 마음먹게 되는 때.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간,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는 단계. 어차피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는, 스스로 변명을 내어 놓고야 마는 순간.


청소로 치자면, 이렇게 저렇게 하나하나 정성껏 정리를 하다가, 정리할 게 너무 많아 막막해져 버리는, 결국 더 이상 정리가 되지 않는 것들을 큰 상자에 몰아넣어 버리는 것 같은.


그래, 청소. 일을 너무 크게 벌렸다. 정리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어디서 물건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며칠째 입버릇이 되었다. 며칠째 방은 쓰레기장 같다. 다 버려 버리든, 다시 쑤셔 넣든, 대충 하고 싶은 '아, 몰라' 욕구가 불쑥불쑥 치민다. 치밀어 오르는 '아, 몰라'를 꾹 눌렀다.


사실, '아, 몰라' 상태가 막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하다 하다, 정말 안될 것 같은데, 빠르게 일을 해치우는, 최후의 수단이 될 때도 많다. 아니, 뭔가 스피드 하게 일을 처리하고, 결과가 썩 괜찮은 적이 더 많은 것도 같다. 단지 초반 기대치에 조금 못 미치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 것뿐.


지구력이라고는 콩알 반만큼도 없는 내게, 장기전으로의 돌입은 역시 맞지 않다. '아, 몰라' 조금 느려도 괜찮지 뭐, 급할 것 없으니, 천천히, 묵혀 있는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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