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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쥰 Jun 11. 2019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

그래, 이젠 가야겠어

 불과 몇 개월 전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취업난 속에서 내 예상과는 달리 졸업 두 달 만에 눈에 넣어두었던 회사에 빠르게 입사했고, 1년을 채 채우지 못한 채 퇴사했다. 앞에서는 고생했다지만 뒤에서는 그것 하나 버티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라고 여겨질지 몰랐으나, 상관없었다.

 첫 회사에서 얻은 거라곤 늘어난 몸무게와 더불어 입사와 퇴사를 함께한 영혼의 동기 N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나, 아직 졸업조차 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이런 어두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둔다.

 그렇게 함께 퇴사한 동기와 묵호로 퇴사 여행을 떠났다. 복잡한 도심은 잠시 제쳐두고 충분히 멍을 때릴 수 있을 만한 곳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부러 관광지도 별로 없고 특별히 뛰어날 것도 없는 곳을 골랐다. (그렇다고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동기 N은 사연 있는 사람처럼 검은 상의에 검은 로브 코트에 긴 머리를 치렁치렁 내려둔 채로 고속터미널에 나타났다. 등에 맨 우쿨렐레가 그런 느낌을 한층 더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마치 현장학습을 나가는 초등학생 같은 모습이었다. 특히 목에 맨 필름 카메라와 충동적으로 자른 앞머리가 그런 느낌을 더했다. 그렇게 가장 각자 다운 모습으로 서울을 떠났다.


 사실 목적지가 동해인 만큼 해가 뜨는 모습을 한 번쯤 보고 싶었다. 6시 45분, 꾸역꾸역 일어나 등대로 걸었다. 여태 몰랐는데 다들 왜 새해에 동해로 오는지 단번에 알았다. 지평선에는 그 흔한 섬 따위도 없이 깔끔했다. 그냥 자를 대고 그은듯한 일직선이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뻥 뚫린 바다는 처음이었다. 구름이 많아 해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이미 충분했다.



 그리고 묵호에서 유명한 오뚜기칼국수로 향했다. 칼칼하게 매운 칼국수가 한 그릇에 4천 원이라니. 심지어 다 먹고 나갈 땐 주인 할머니가 재료를 다듬으면서 우리 쪽은 보지도 않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라고 덕담까지 해주신다. 마음 깊은 곳이 따땃해져서 N과 가게를 나오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 실실 웃었다. 4천 원으로는 모자라는 곳이다.

 부른 배를 이끌고 바다가 또렷하게 보이는 창가 의자에서 커피를 마시니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N은 회사 다니느라 못 읽고 쌓아둔 책이 산더미라며 독서 삼매경이었다. 가끔은 우쿨렐레도 쳤다.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파도를 피하는 게 재미있는지 기러기가 일부러 파도 근처에 슬쩍 자리 잡는 걸 계속 눈으로 좇았다. 내 머릿속을 차지하던 분노와 괴로움은 어느새 상당히 씻겨 내려가 있었고, 앞으로 난 어찌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지 아니 어떻게 하면 덜 그럴 수 있을지와 같은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나는 떠나야 했다.



 퇴사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떠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먼저 건넨 건 엄마였다.

“네가 노래를 불러 쌌던 그 워홀이나 가 부러라.”

이 한 마디가 꽤나 오래전부터 했던 고민을 다시 꺼내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묵호에서 그렇게 묵혀왔던 고민을 꺼내놓고, 그냥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은 내가 얼마나 충동적인 사람인지 우리 엄마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충동적으로 전과했고 충동적으로 사랑했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났고 충동적으로... 그토록 많은 걸 했다. 남보다 충동적일 때가 많더라도 나는 결코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고 항변해본다. 오히려 결정의 순간을  당장 내 앞으로 끌어다 놓는 걸 잘하는 성질 급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좋아하는 나로선, 첫 회사가 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하다는 말은 이제 너무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반대로 내가 이걸 하면 행복하지 않구나라고 가지치기를 해나가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다. 어쩌면 그게 나처럼 답안지가 넘쳐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기도 하다. 때로는 너무 충동적인건 아닐까 살짝 의심하면서 말이다.


 참고로 내 출근길 유일한 행복은 ‘백지영 - dash’를 들으면서 내적 댄스를 추는 것이었다. 다들 어디에서든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밤을 함께 버텨낸 동기 N에게도 행운이 따르길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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