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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레이 Aug 09. 2017

프로테스탄티즘과 노동

경제 성장과 시대정신에 의해 변하는 자본 - 노동의 의미 #2

 <1> 가나안 농군학교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때 여름방학이 오면 한 가지 매우 귀찮은 게 있었다. 난 여러 교인들끼리 모여 2박 3일 동안 집단생활을 해야만 하는 교회여름캠프, 소위 말해 '여름성경학교'를 굉장히 싫어했다. 물론 어린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 많이 준다고 꼬드겨서 교회 행사에 참여시키는, 한 4성 장군이 주창한 이른바 '초코파이 선교론'이 내게 매번 통했긴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정도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투자비용(2박 3일) 대비 얻을 보상(맛있는 것)을 대략적으로 그릴 수 있다. 난 배운 게 없어 협상은 잘 몰랐지만 줄곧 사딸라를 외치던 김두한처럼 생떼 부리는 스킬 하나는 뛰어났다. 그때 여름성경학교에 가기 싫었던, 또는 더 강한 보상을 원했던 내게 교회 아동부장 선생님은 말했다. 

 "얘들아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맛있는 거 주고 캐리비안 베이보다 더 좋은 곳 갈 거야~"   

 어찌어찌 감언이설에 넘어간 나와 친구들은 가나안 농군학교라는 곳에 2박 3일 동안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때, 그러니까 15년 전에 있었던 일을 쓰고 있는 걸 보면 그해 교회여름캠프는 정말 특별했다. 나중에 그 아동부장 선생님은 자기가 말했던 건 생명의 양식 뭐 그런 거라고 둘러댔다.

 

적어도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구호는 외우고 나간다.


 가나안 농군학교는 개신교 장로인 김용기(1909년-1988년)가 "한 손에는 성서를, 한 손에는 괭이를"이라는 신념에 따라 1962년에 설립한 기독교 합숙교육기관이다. 교육과 노동을 통한 의식교육이 특징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교육기관으로 초창기에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새마을 운동의 정신 교육의 원형을 제공하였다.
-위키 참조

 

 당시 그곳의 강당에서는 에어컨이 없는 대신 각 개인의 손에 부채를 쥐어주었다. 필요 없는 전기 낭비는 줄여야 했다. 캔은 찌그러뜨려 버리는 건 상식이고 한 번 볼일 볼 때 사용하는 휴지가 두 칸 X 2회 = 총 4 칸을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한 가르침을 받았다. 30도가 넘는 땡볕 아래 땀줄기로 옷을 흠뻑 적시고 먹는 유기농 반찬은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개고생 하던 시절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에 비유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이외에도 재래식 변소 사용, 괭이질 체험 등 절약과 근면함을 강조하는 여러 교육과정이 있었다. 3일째 되던 날 강사진들은 마지막으로 근면한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한 여러분들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다소 비장한 일장연설로 마무리를 지었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로 청교도 정신을 접한 순간이었다.




<2> 칼뱅의 예정설


 가나안 농군학교의 철학은 근면과 검소를 미덕으로 삼은 청교도 정신, 즉 프로테스탄티즘에 기반한다. 하지만 17세기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이처럼 현세에서 잘 살아보기 위해 악착같이 노동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삶의 개선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의지로 운명을 바꾸려는 인간의 노력을 오히려 죄로 여겼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내세에서 살 영생에 있었다. 칼뱅의 예정설에서 비롯된 내세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이를 벗어나려는 절박한 노력. 이것이 그들이 열심히 일하고 자본을 축적했던 이유 그 전부였다.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에서는 성직자가 참회 신청서(고해성사)를 접수하면 기도와 성찬 예식을 통해 그 의뢰인의 죄를 사면시켜주었다. 베버는 이를 전통사회의 주술적 행위라고 말한다. 주술성 행위로 죄를 사하는 정도가 극심한 때에는 면죄부로 잘 알려진 천국 티켓을 교황이 직접 팔았다. 그러니 클라이언트, 가톨릭 신도들은 큰 잘못을 저질러도 나중에 회개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이후 잘 알려져 있듯이 면죄부 판매는 루터가 교회개혁운동에 앞장선 직접적 계기가 된다.


카톨릭에서는 고해성사로 죄의 사면을 받는다


 루터를 거쳐 칼뱅 시대로 오면 구원관이 매우 단호하게 변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달린 것이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 선택받은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다. 사실 루터가 먼저 예정설을 주장했으나 예정설의 후폭풍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 우선순위에서 보류했는데, 칼뱅은 그런 주저함 없이 개신교도들의 환상에 구멍을 뚫어 찢어버린다. '나는 부패한 가톨릭을 버렸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으니까 천국에 갈 거야'라고 막연하게 믿었던 당시 개신교도들은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뀔 팩트 폭행을 당한 셈이다. 구원의 확신이 없어진 개인에겐 외로움만 남았고,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으로 버텨온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가혹했다. 절망한 사람들은 칼뱅에게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 증거가 없다면 최소한 실마리라도 보여달라고 말했다. 

 

장 칼뱅, 나는 답을 알고 있지롱 V


 정작 칼뱅은 자신이 구원받을 사람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 확신한 증거를 바로 노동에서 찾았다. 


 세계는 오직 신의 영광에 봉사하도록 정해져 있고, 선택된 기독교는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세계에 신의 영광을 각자의 몫만큼 증대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신은 기독교도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신은 삶의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그 형성이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칼뱅교도들의 사회적 노동은 오직 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한 노동일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의 현세적 삶에 봉사하는 직업 노동도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갖는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이제 칼뱅파를 따르는 신도들은 근면하게 일하고 검소한 삶을 사는 자신의 모습에서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확신을 확실하게 강화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동하며, 도덕적으로 행동한다. 구원의 확신을 강화할수록 개인은 불안감을 해소했고, 신의 은총을 받는다. 또한 열심히 쥐어짜 내어 일한 결과 부를 축적했고, 청교도들은 이 쌓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근대적 합리주의로 향한 첫걸음이었다. 왜냐하면 프로테스탄트 신자는 개인이 노동을 열심히 할수록 하나님이 갸륵하게 여겨 구원해준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그에 걸맞은 행동과 인격이 삶의 전체에서 나타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주의에서 벗어난 탈주술성과 합리성을 의미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에게 빌거나 샤먼을 찾아가기보다는,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고 근본 원인을 탐구하여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금욕적인 생활 방식이란 자신의 전 생애를 신의 의지에 따라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또 이러한 금욕은 어떤 보상을 바라고 행하는 업적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행위였다. 자연 상태의 인간 생활과 구별되는 종교적으로 요청된 신도로서의 생활 방식이 속세를 떠난 수도자 집단에서가 아닌 세상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
 내세를 목표로 하면서 현세의 생활을 합리화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금욕적 프로테스탄트의 직업 사상이 끼친 효과였다.




<3> 프랭클린 정신 


 청교도는 노동 없이 자본을 굴려 부를 축적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땀을 흘려 일하며 자본을 불려야 했다. 신에게 받은 달란트(talent, 재능)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처벌당해야 했다. 따라서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일하지 않고 고리대금업이나 정치적 투기로 돈을 버는 유태인들은 단죄해야 할 대상이었다. 막스 베버도 이렇게 정치세력과 결탁해 돈을 버는 유태인들의 경제 윤리를 '천민자본주의'라 부르며 비판한다.    

 또 중요한 건 칼뱅파는 부의 축적을 구원의 징표로 여겼지만, 부의 소비는 악덕으로 간주했다. 부의 과시적 소비는 사람을 더욱 게으르게 만들어 규칙적으로 노동하는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인생이 끝날 때까지 신의 영광을 하나라도 더하기 위해 분투해야만 한다.


 자본 축적 과정에서 노동의 역할을 강조하며, 사치스러운 소비를 금기시하는 청교도 정신은 미국의 젊은 인쇄업자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프랭클린 본인은 이신론자(신은 존재하지만 세계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로 알려져 있지만 아버지가 독실한 청교도였으므로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하다.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나오는 근면함, 올바른 부를 추구하는 성실함, 과시적 소비를 멀리하는 금욕주의 등으로 설명되는 프랭클린의 가치관은 오늘날까지도 전 미국인들의 행동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아쉽게도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지폐에선 기업가를 찾아볼 수 없다.



 

 (다음 글 예고)


 뿐만 아니라 노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프랭클린 정신은 미국의 기독교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한국 사회에도 적용되었다. 다만 '한국식'으로. 한국에서 노력론은 프랭클린 정신처럼 무에서 유를 일구는 자본주의 정신보다는 정해진 지위나 자리를 놓고 승자독식 배틀하는 유교의 입신양명론으로 연결되는데...    


야간자율학습 삼매경인 한 고등학교


 또한 한 개신교 종파의 '삼박자 구원론'은 칼뱅의 윤리에 역행하는 주술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부의 소비도 긍정적으로 보며 한국 사회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되는데...

 

삼박자 구원론 : 영혼, 물질, 건강이 잘 되는 것 = 구원의 증거


<경제 성장과 시대정신에 의해 변하는 자본 - 노동의 의미>

#1 근대 이전 사회의 노동과 자본 / 지주와 저성장 시대

#2 일하는 자 = 선택받은 자 / 프로테스탄티즘과 노동일하는 자 = 선택받은 자 / 프로테스탄티즘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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