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유행하는 '꽃길만 걷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그 말, '꽃길만 걷자' 자체가 너무 유약하게 들린다고 할까.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건 없지만 일단 대학원 가고 박사학위 받으면 꽃길이 기다리고 있겠지, 퀘퀘한 신림동 골목에서 죽치고 열심히 공부해 공무원 시험을 붙으면 꽃길이 기다리고 있겠지'. 이런 식으로 공부로만 하는 적은 확률에 기대어 평생 동안의 안정을 보장받으려는 심보가 아무래도 너무 날로 먹으려는 것 같아 보인다. 뭐 비난 받아도 상관없다. '꽃길만 걷자'라는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는 욕심 없고 소박하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학을 졸업한 후 남들 다 하는 경쟁하는 삶을 두려워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너도나도 끝 모르는 공부 경쟁에 몰입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나는 대학생 스스로 자신이 사회의 양지에 속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업이 요즘 아무리 안 된다지만 대학교 안에 있으면 생계에 대한 불안함이 졸업 이후로 유예된다. 캠퍼스 라이프는 햇빛이 드는 양지 그 자체이다. 내가 속해 있는 양지가 있는 반면에 노인, 장애인 등의 삶은 햇빛이 들지 않는 심해와 같은 음지이다. 하루하루 온몸이 쑤시고, 육체적 고통 때문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단은 없으니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 사회안전망 햇빛이 도달하는 경계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 아무리 헬조선이라지만 나는 그들에 비하면 수많은 가능성을 안고 산다.
노인, 장애인들이 사는 비참함과 내 삶을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안도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항상은 아니지만, 때때로 내가 누리고 있는 혜택을 감사해하고, 내가 너무 오만한 건 아닌지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내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관심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닌지.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이 사회적 약자들을 서포트해주는 사람들에게도 주목하자. 사회복지사는 사명감을 연료로 삼아 태우며 하루하루 버틴다. 그리고 그 땔감을 다 태우고 나면 감정적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말 못하는 지체장애인 아이들을 상대로 매주 목욕시키는 봉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상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말 못하는 아이들 먹이고, 냄새나는 기저귀 하루에 수차례 갈고, 똑같은 말 귀찮게 반복하는 걸 계속 상냥하게 대꾸해야 한다. 난 1주일에 단 두 시간 하는 것도 짜증이 확 올라올 때가 많았는데, 이걸 매일 한다. 이 일을 왜 계속 하냐고 복지사 분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이 천사같아서 남는다고 한다. 돈도 적게 받고, 도저히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본인이 다른 일을 해야 스스로에게도 더 이득인데, 자기들이 없으면 이 아이들 맡을 사람 없다는 식의 사명감으로 꾸역꾸역 버텨나간다. 치매 중풍 노인 환자들을 돌보는 분들도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외과전문의 이국종 씨가 말했듯, 우리나라에서 육체 노동으로 사회 하부를 지탱하는 서비스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는 매우 좋지 않다. 많은 이들은 공부 못해서 힘 쓰는 일이나 한다고 무시한다. 공부 못하면 더울 때 더운 데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에서 일한다는 박명수 어록이 대부분 사람들의 현실 인식이고, 이건 정말 한참 잘못되었다.
내가 사는 삶이 얼마나 탈이 없고, 복을 받았는지 한 번 뒤돌아보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언젠가 나도 내가 했던 모든 노력이 다 의미없고, 부질없다고 생각할 만큼 나이가 들고 몸이 병약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 주어진 길을 꾸준히 나가는 것. 그리고 그 길을 같이 걸을 소수의 몇 명만 제대로 건져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오만함을 숨기기 위한 처세술용 거짓 겸손이 아니라,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겸손을 갖추자. 또한 간호사, 소방수, 사회복지사 등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회 하부 및 최전선에서 육체 노동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분들께 항상 감사하자. 그렇게 묵묵히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꽃길만 걷자고? 난 그럴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