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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레이 Jul 30. 2017

근대 이전 사회의 노동과 자본 / 지주와 저성장 시대

경제 성장과 시대정신에 의해 변하는 자본 - 노동의 의미 #1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젠틀맨, 레이디가 되기 위한 선행 조건은 노력이나 성품이 아닌 타고난 출생 신분이었다. '지주 계급' gentry에서 '온화한, 신사다운'이란 뜻의 단어 gentle이 파생되었듯이 당시에는 먼저 출신 계급이 높아야만 비로소 세련되고 멋진 사람이 될 자격을 지닌다는 게 상식이었다.

 권력과 명성이 성품을 결정짓는 시대였다. 신분이 높은 사람에겐 당연히 그가 성격과 매너가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동경하는 반면 신분이 낮은 사람은 보자마자 무시하는 속물근성이 만연했다. 영영사전에 의하면 gentleman의 어원은 'A man of gentle birth or status'로 '고귀한 지위를 타고난 사람'을 뜻한다. '성격이 온화하거나 신사다운 사람'은 그다음에 따라오는 설명이다.


이런 짓을 하고 다녀도 그가 젠틀맨인 이유는 마더파더가 젠틀맨이기 때문이다.


 영국 지주 및 귀족의 부의 원천은 광활한 영지 내  임대료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하지 않아도 꾸준히 입금되는 불로소득의 대부분을 사교계 파티 또는 저택을 짓는 등 사치스러운 소비에 사용하거나 또는 자녀 교육에 재투자했다.

 여유로움은 미덕이었고, 귀족들은 그 한가한 시간 동안 사교계에서 그들끼리 어울리거나 사냥을 하면서 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외국어, 역사, 논리학, 예의범절 등 교양들을 두루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모든 행위들의 동기는 자신이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평범한 사람과 구별되는 고귀한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문도 모르는 무식한 농민들은 평생 농사를 짓고 부역해야 했으며 토지를 소유하고 배우신 양반 계급은 여가 활동으로 농민들이 알 리가 없는 풍류의 멋을 즐겼다.

 

대표적인 신사와 숙녀의 사랑을 그린 오만과 편견, 그리고 사교계 파티의 한 장면.


 평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고 남은 재화를 저축할 여력이 없었기에 더 나은 삶의 개선을 기대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평민들의 신분상승은 불가능했다. 왜 저축을 할 수 없었을까? 그건 산업혁명 이전 전통사회는 생산성의 개선이 거의 없었으며 이에 의해 경제성장률이 0.1% 미만인 초저성장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병이 돌거나 흉년이 들어 경제가 후퇴하지 않으면 다행이었을 정도다. 이전 세대의 부를 지우고 평등하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경제성장이다(경제성장만이 부의 평등화를 이루기 위한 바람직한 방법인지는 나중에 다루어야 할 문제지만). 그런데 전통사회에서는 그게 없었다.


 잠시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자면 20세기 후반 한국처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사회에서는 밑천 없이 출발한 사람이라도 2-30년 후에 큰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반대로 말해 경제성장이 없다면 이전 세대가 저축한 부가 다음 세대에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고 계층 이동은 그만큼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반 세기 만에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과 한강의 기적 (출처: zum 학습백과)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이렇게 말한다. 과거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경험했지만 현재 성장률이 점점 낮아지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삶을 체감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그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인당 생산이 한 세대에 10배씩 증가하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스스로의 노동으로 얼마나 돈을 벌고 저축할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더 낫다. 이전 세대의 소득은 현재 소득에 비해 매우 적어서 부모와 조부모가 쌓은 재산은 가치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면 이전 세대에 축적된 자본의 영향력이 늘어난다. 경제가 정체될 때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저성장 체제에서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런 상황은 장기적으로 부의 분배를 심각한 불평등으로 몰고 가는 중요한 요인이다. 대체로 상속된 부에 따라 결정되는 계층 구조를 지닌, 자본이 지배하는 과거와 같은 사회(전통적인 농촌사회와 19세기 유럽 국가들을 포함한다)는 낮은 성장 체제에서만 생겨나고 존속될 수 있다.


 마지막 문단에 나온 그의 말처럼 과거는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노동으로 삶의 개선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노동은 농민들이 아무리 굴려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평생 짊어져야 할 의무였다. 노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은 고스란히 지배계급에게로 넘어갔기에 잉여소득은 없었고 신분상승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교육의 기회가 없는 농민들은 과연 그들의 자녀가 교양을 갖춘 레이디나 젠틀맨이 될 가능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을까.  

 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기계적인 노동을 열심히 쳇바퀴 굴리듯 반복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생존을 위해서라면 너무 씁쓸하다. 하지만 전통사회의 농민들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마주하며,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았다. 그저 순종과 달관, 그리고 감사로 충분한 사회였다. 귀족들은 그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밀레의 만종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근면'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가르침이 사회 분위기를 지배한다. 그리고 이는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으며 그 중요도가 뒤늦게 발견된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비롯된다.


<경제 성장과 시대정신에 의해 변하는 자본 - 노동의 의미>

#1 근대 이전 사회의 노동과 자본 / 지주와 저성장 시대

#2 일하는 자 = 선택받은 자 / 프로테스탄티즘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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