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사이다 추가요!

배려의 척도

by Riley

2년 전부터 음주를 자제하고 있다. 건강 상의 이유다. 대한민국 음주 문화에서 금주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술자리에서 첫 인사를 나누는 경우에는 의도치 않게 예의 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즐거운 술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 괜히 유별나게 군다는 눈빛도 감내한다. 심지어 대놓고 장사 한두번 하냐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상대는 관심도 없을, 나의 금주 이유와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반응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음주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술 강요 없는 문화, 개인의 취향과 사정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그렇다. 원하는 만큼 먹으라며 오히려 내 맘을 편하게 해주려는 어르신들도 있다. 2000년대 초반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에게는 참 놀라운 변화다.


자주 나가는 그룹의 어떤 분은 주문을 넣을 때 매번 내 사이다까지 챙겨주는 친절함까지 보여주신다. 어찌 생각하면 음주는 골프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실수해도 괜찮다며 초보자를 배려해주는 십수 년 구력의 베테랑들과 술자리에서 상대의 난처함까지 보듬을 줄 아는 대인배들은 종목은 다르지만 동일한 기본 덕목을 가지고 있다. 그 덕목은 “배려”이고, 그 기저에는 “공감능력”이 깔려있다.


타인의 불편함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악의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 단순 무지일 수 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형태의 삶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어찌보면 좁은 시야를 가진 딱한 상황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상대의 상황이 있고,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비수가 됐을 수도 있겠다. 조금 뒤늦게 아차싶을 때도 많다. 그럴 때는 미안함이 요동치며 올라온다.


그렇다고 매 순간 긴장의 끝을 붙잡고 살 수도 없고, 말을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배려는 필수다. 그렇다면, 그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그 수준은 누가 정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게 타인에 대한 공감, 한동안 한참 강조됐던 EQ(감성지수)가 아니겠는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깜짝 놀랬다. “아, 부모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내가 너무 몰랐구나.” 시간이 지나도 잔잔하게 흐르는 슬픔의 강물, 밀려오는 후회와 안타까움, 평생 안고 살아야할 허전함. 이 감정은 수백만가지 감정 중 하나일 뿐이다. 얼마전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릴리와 찌르레기>는 딸을 잃은 부부의 치유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보면서 잠들었다는 리뷰도 많던데, 나는 영화를 통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모의 상실감을 간접적으로 배우게 됐다.


내가 안겪어봤기 때문에 타인을 향한 비수가 전부 용서되는 건 아니다. 상상력은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도 발휘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인 것 같다. 나에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평생, 매일매일 길러야 할 요소다. 나이 먹는만큼, 더 배우고 경험하는 만큼, 좀더 사고의 폭과 타인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아, 그런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 않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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