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이듦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아마도 혼자 사시는 엄마와 두분이 사시는 시부모님을 지켜 보면서 자연스레 그리된 것 같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점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다.
어렸을 적 나는 내가 어른이 될지 몰랐다. 20대 때는 30대가 될지 몰랐고, 30대 때는 40대가 될지 몰랐다. 근데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나이는 먹더라. 오늘도 한 걸음 더 내 딛었다. 50대가 되면 어떨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늘 그렇듯, 가보지 않은 나이대는 멀게만 보이고, 막상 그 나이에 도달하면 그 멀게만 보이던 지점은 바로 코앞이었음을 깨닫겠지. 마치 마술 거울이라도 있는 것 같다. 앞에서 보면 길고, 뒤로 돌아보면 짧게 보이는.
무언가 되기 전까지는 자신은 그 무언가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막상 자신이 그 무언가가 되면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 현실에 당황한다. 그 무언가가 내가 원치 않은 것일 때 더욱 그렇다. 나이듦도 마찬가지다.
내가 30대 중반 시절, 어느 29살 후배가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머, 전 내년이면 서른이에요. 어떻게요. 제 나이가 벌써 이렇데 됐다니."
속으로 생각했다. '헐, 누가 누구 앞에서 왠 나이 타령.'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그녀와 비슷한 말을 종종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언젠가 나도 엄마한테 비슷한 말을 했었고, 그 때 엄마의 대답이 내 뒤통수를 쳤다.
"난 나이 쉰만 됐으면 좋겠다."
어느 지인이 수능을 앞둔 큰 딸과 둘째 딸의 대화 내용을 재미있고도 어이가 없다며 공유해줬다. 고3 언니가 고1 동생에게 말했단다.
"야, 너는 좋겠다. 모든게 가능한 나이라서."
중년 남자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시는 할아버지를 가끔 마주친다. 할아버지의 아들로 추정되는 중년 남자는 지적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매번 그 둘의 꼭 잡은 손을 바라본다. 차마 할아버지의 얼굴까지는 못보겠다. 수십 년 간 참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왠지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 어르신도 어느 순간, 그의 아들은 중년이 되었고 자신은 백발 노인이 됐다는 사실을 직면했겠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여러모로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바뀐 세상에 깨어있으면 나이듦이 매력이 될 수 있다. 나이듦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과 지혜다. 그것들을 무기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의적으로, 멋지게 리드해가는 유튜버나 작가들을 종종 만난다. 노년의 삶에 대한 멋진 이미지를 상상하며 산다면, 노년을 맞이했을 때 그 상상대로 긍정적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대단한 업적을 이루거나 유명인이 되지 않더라도, "주도적인 삶"의 모습은 수없이 다양하다. 뒤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세상에서 그림 그리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80대 할머니, 섹스폰을 연주하면서 동호회 회원들을 가르치는 할아버지, 20년째 한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는 시장 국수장인 어르신 등 여럿 어르신이 떠오른다. 누구보다 열정을 잃지 않는 분들이다. 그들에게서 열린마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자신을 한정 짓지 않는 풍부한 상상력, 호기심, 용기를 발견한다.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충분 조건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