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한 사람. 과거의 나였다.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업무가 없을 때는 운동, 독서, 청소, 영화감상 등 무언가 계속해야 했다. 그게 미덕이라고 생각했었다. 야근 없이 퇴근한 후에는 뭔가를 계속했었다. 피곤해도 그냥 자는 게 아쉬워 뉴스라도 봤었다. 아주 잘 포장하면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표현될 수 있겠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이유 없는 불안증, 강박관념, 집착 등의 증세가 있는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이후 그런 나를 변화시킨 두 개의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 10년 전 아빠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 소중하다고 배웠다. 하루하루 일상이 기적이다. 끊임없는 활동은 덧없다.
두 번째 사건, 신체에 병을 얻었다. 이 사건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의 미덕을 알게 됐다'라기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당장 내일이 없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는가. 두려움과 걱정뿐. 아무것도 안 해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공기를 마시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게 무언지, 비로소 알게 됐다. 스스로에게 무의미하게 가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년이 지난 요즘,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베란다 창문 너머 보이는 푸른 나무, 비 온 후 코 끝에 전햐지는 풀내음. 이렇게 좋은 것들도, 순간이 지나면, 하루가 지나면, 계절이 바뀌면, 다 지나간다. 그걸 알기에 그 유한함을 들숨으로 받아들인다. 거슬리는 것들도 의식적으로 그냥 흘려보내려고 애써본다. 그게 잘 안되면 힘들어하는 마음 상태를 그저 바라보려고 애쓴다. 물론 잘 안된다. 그러나 노력은 해본다.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다. '하루 중 본인의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본 적이 있나요?' 대부분 대답은 예상대로, '아니요.' 사람은 하루 평균 2만 번 이상의 호흡을 하는데, 단 한 번도 들여다볼 생각을 못한드. 세상 온갖 것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정작 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혹시,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느라, 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 모습을 포장하느라,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한 하루 1분의 시간도 확보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나름의 가치 있고 즐거움을 주는 활동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 모든 활동의 종착지는 내 자신이 아니던가.
나에게 집중해야 내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조금씩 비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비어내야 더 채울 수 있다. 복잡하고 꽉 채워진 머리에 휴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