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희를 위한 시>
박oo
봄이 오면 예쁜 꽃들이 핀다
나에게도 봄이 온다
활짝 핀 꽃처럼
어깨를 활짝 펴고
즐겁게 학교에 간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예쁜 조카, 담희. 무지개색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기특한 손녀딸을 보며 엄마가 조카를 생각하며 동시를 쓰셨다. ‘봄’, ‘꽃’, ‘활짝’, ‘즐겁게’ 등 온통 밝고 경쾌한 단어들 뿐인데, 왠지 모를 아련함이 남는 것은 일흔이 넘는 엄마의 구부정한 등을 보고 안타까워 하는 딸만의 씁쓸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뭔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짧은 시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본다.
“그 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는데. 그 때는 너희들도 다 어려 함께 살고 있었고, 너희 아빠도 살아 계셨고,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살아 계셨고. 그때는 몰랐는데, 그 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아빠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뒷좌석에 앉아 계신 엄마가 덤덤하게 던지신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엄마보다 서른살도 더 어린 내가 가지고 있는 젊음이 괜히 미안하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봄이 온다”를 쓰시면서 자신의 봄은 지나갔다는 생각을 하셨을까.
한 사람의 황금기란 언제일까. 내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일까. 벌써 지나갔나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인생에서 황금기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는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지인들에게 장난 삼아 물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40세가 넘은 사람들에게 황금기가 언제인지 물으면 대부분 20~30대라고 대답한다. 60세가 넘은 분들에게 물으면 40~50대라고 대답한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황금기는 과거 어느 시점에 있었다고 믿는다는 사실은 그냥 웃고 넘어가기에 너무 큰일 같다. 심지어 어느 고3 학생이 고2 동생에게 “너는 모든 게 가능한 학년이니 참 부럽다,”라고 했다고 하니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어떤 인터뷰 기사에서 96세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60살에 은퇴를 했어. 그때는 이제 다 늙어서 무얼 하겠냐며, 그냥 쉬면서 남은 인생 사는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이제와 보니 그 이후 30년이 훌쩍 넘게 흘렀어. 4년 전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내가 60살때부터 공부했으면 지금 중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1920년에 태어나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님은 어느 강의에서, “철이 든다는 것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어야 하는 나이인데, 100년을 살아보니 적어도 60세는 되야 철이 드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75세까지에요,”라고 말씀 하신다.
이렇게 거의 100년을 사신 인생 선배님들께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 기준으로 생각하면 고작 20대가 인생의 봄이었다고 믿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엄마의 조카를 위한 동시에 나오는 “나에게도 봄은 온다,”를 희망이 아닌 한숨으로 해석하는 나 자신부터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최근 영화 <미나리>를 통해 열연하며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는 윤여정(1947년생)씨가 위 선배님들의 말씀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큰 업적을 남겨서 황금기라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에 대해 더 알고, 타인의 인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따뜻한 가족과 벗이 있는 것 자체가 인생의 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나왔고, 주인공 역할을 한 김혜자씨가 백상연기대상에서 다시 읽어주어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대사처럼 우리의 인생 그리고 우리의 황금기를 잘 표현하는 문장은 없는 것 같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이 부시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아 미대에 가기를 꿈꿨으나 운동선수이셨던 할아버지의 강요로 운동선수의 길을 걸었던 엄마. 삼남매를 독립적인 성인으로 키우고, 어깨를 활짝 펴고 등교하는 손녀딸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지금이 엄마 인생의 황금기라고, 아직 오지 않은 또다른 황금기를 꿈꿔 보시라고 감히 말씀드리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