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목적지는 나 자신이었다

너는 나, 나는 너

by Riley

나는 90대 노인이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깜짝 놀랐다. 온몸이 쑤시지도 않고 너무 개운했다. 거울을 보니 40대로 돌아와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지하철로 향했다. 평소 무릎이 아파 계단이 늘 난관이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오르고 내려갔다. 집으로 오늘 길이 너무 가벼웠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화창한 봄날이었고, 햇살은 너무 따스했다. 늘 몸 구석구석, 관절 사이사이에 잠복해 있던 통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췄다.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짧은 영상을 보고 난 후 상상의 글을 써봤다. 언젠가부터 지하철 계단을 한 칸씩 조심스레 올라가는 어르신을 보면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마음이 짠하다. 엄마와 절에 방문했다가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네게 말씀하셨다. "나도 외할머니가 천천히 걸으면 이해가 안 갔어. 무슨 무릎이 그렇게나 아플까 생각했어. 내가 이 나이 돼보니 이제야 알겠네." 그 이후 엄마에게 좀 빨리 가자는 말을 못 하겠다.


아무리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라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고 있는 상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건 교만이다. 그래도 이해해보려고는 해야 한다. "남의 일"에서 "남"은 다 같은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지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도 있다는 동질감.


내가 겪는 감정을 믿었던 누군가가 이해하지 못할 때 섭섭함을 느낀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일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거다. 당연하기에, 내 심정을 헤아려주려 노력하는 이를 만나면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너무나도 평탄한 일상만 사는 삶에 단점이 하나 있다면, 관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맛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떤 일에는 전부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노화의 불편함을 이해하는 것이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나, 그 이해의 대상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90대 노인이 맞이한 황당한 아침을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수많은 현자들의 조언을 들을 수밖에 없다.


"지금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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