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비교하시나요?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걸 안 해본 사람을 보면 우월감을 느끼는 것 같다.
"네가 안 해봐서 그러는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
"xx를 안 해봐서 그래."
"네가 어려서 그래."
고백하건대, 정신줄 놓을 때면 나도 그렇다. 좋은 경험은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소중한 특권이다. 세상 수십 억 명의 사람들이 철저하게 고유한 얼굴과 특징을 가지고 있듯, 경험도 마찬가지다. 성공도 경험이고 실패도 경험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경험의 농도와 깊이는 경험 당사자만 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어른이 어릴 적 경험해 본 건 지금의 아이들이 경험해 본 것과 다르다. 시대가 변했고 환경이 변했다. 학교생활부터 삶의 방식과 관계를 맺는 방법도 변했다.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등의 진리적 바른 원칙은 존재하기에 진심 어린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어도 훈계적 거만한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비혼이 많은 작금의 시대에서, 기혼자들의 어른 코스프레도 많다. '네가 결혼을 안 해봐서 모르는데'로 시작하는 어른 아이들은 비혼인 중년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난임이 많은 작금의 시대에서, '네가 부모가 안돼 봐서 모르는데'로 시작하는 훈계는 어떠한가. 난임의 고충을 경험해 봤는가. 각자의 경험은 단순히 광이 더 나는 사과를 고르 듯 쉽고 간단하지 않다. 그냥 "불가하다".
내가 네가 경험해보지 못한 걸 경험했다면, 그 똑같은 시간에 너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걸 경험했다는 건 상식이다. 너의 경험은 나의 비경험이고. 나의 경험은 너의 비경험이다.
진정한 어른이란, 내가 가진 조그만 경험으로 훈계질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경험은 드넓은 세상에서 아주 티끌만 한 일부라는 걸 인정하고 그 조그만 내 경험이 또 다른 이의 조그만 경험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인류애를 가진 사람이 멋진 어른이다. "어른"은 그저 개념적 단어일 뿐이다. 어른은 그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고 걸어간다. 현재 진행형만 있다.
모든 생명은 대단하다. 나도 대단한 건 맞는데, 나라는 사람의 경험만 절대적이고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이 경직된 사고와 격리된 삶을 자초한다.
나 자신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짐 섞인 글을 써본다. 정신줄 놓는 주기를 줄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