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하늘, 우뚝 솟은 산
정신이 아주 맑을 때가 있다. 내면이 차분해지고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도 들어온다. 그동안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이 많았음을 인식한다. 정신이 맑을 때 주변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고 호기심이 생기면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보아 진다.
정신이 맑을 때는 나의 감정도 더 또렷이 보인다. 나는 이런 감정을 느껴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내가 하는 말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더 힘이 들어간다. 무심코 지나쳤던 타인의 친절함이 농도 깊이 느껴진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여 분노가 올리오는 게 느껴진다. 나의 내외부 모두 슬로 모션이 되는 것 같다.
자주 방문하던 병원에 갈 때마다 바라보던 유리벽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건물 내부에서 자라는 싱그러운 식물들이 기다림의 지루함과 초조함을 달래주고 있음이 보인다.
너무 잘 자라는 집안의 화초는 남편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싱그럽게 빛을 내고 있음이 보인다.
가끔 가던 씩씩한 약사 선생님은 1999년에 약사시험에 합겼했고 합격증 속 아가씨의 젊음은 싱그러웠다.
매일 타던 신분당선 손잡이는 샛노랗고 손잡이는 다양한 신장을 위해 키가 다르게 달려 춤추고 있다.
내가 매일 맑다면,
덥고 추운 날씨와 상관없이,
매 순간 요동치는 내 감정의 기복과 상관없이,
나를 향한 타인의 언행에 상관없이,
나는 청명한 가을 하늘과 같은 기분으로,
우뚝 솟은 산처럼,
당당하고 선명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