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보통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서로에게 <소나무>가 되자
가끔씩 유독 꽂히는 노래 가사를 만난다. 나에게는 가수 이규석씨의 데뷰곡 <기차와 소나무>가 그런 노래 중 하나다.
<기차와 소나무 – 작사·작곡 이규석>
기차가 서지않는 간이역에
키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남겨진 이야기만 뒹구는 역에
키작은 소나무 하나
낮은 귀를 열고서
살며시 턱을 고인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는 산이 되고
우리들에게 버려진 추억들은 나무 되어
기적 소리 없는 아침이면 마주하고 노랠 부르네
마주보고 노래 부르네
장소는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거기에 작은 소나무가 차분히 서있다. 그 소나무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이야기들에 귀 기울인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역에서 아무도 귀를 열어주지 않는 흘러간 이야기를 소나무가 턱을 고이고 듣는다. 다소 우울할 법도 한 가사는 밝은 리듬과 반주로 인해 한 편의 시로 승화된다.
가끔씩 지하철에서 혼자 허공에 대고 누군가를 욕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대개 다른 칸으로 옮겨가거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그런 분들에게서 “외로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 또는 혼자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외로운 몸부림.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지하철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적어도 다음역까지는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동료 탑승객에게 마음껏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소리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과거 본인의 억울한 사정, 자식 이야기, 정치 이야기 등 매우 다양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용보다는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 그 자체일 것 같다. 그들에게도 턱을 고이고 들어줄 “소나무”가 필요한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수가 어느 마을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한 실험을 했다. 사람들 간의 관계를 점도표로 나타내고 그들의 행복지수를 기록한 것이다. 실험 결과 중 가장 인상깊은 내용은 점도표에서 불행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끼리 뭉쳐있다는 점과 그들 중 일부는 네트워크의 끝에 있다는 점이다. 행복에 있어 관계의 중요성이 확인된 실험이다. 지하철 행인들을 향한 외침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관계의 부재에서 오는 소외감일 것이다. 도시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매일 시공을 공유해도 그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기차와 소나무>에서 키 작은 소나무는 보통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는 산이 되고, 버려진 추억들은 나무가 됐다. 그리고 결국에는 소나무와 산과 나무는 마주하고 노래를 부르게 된다. 해피엔딩이다.
보통의 우리들은 아침에 일어나 일상의 루틴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희로애락,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면서. 아무도 알아줄 것 같지 않은 처절한 외로움도 가끔씩 등장한다. 그런 보통의 우리들이 보통의 이야기들을 마음껏 떠들고 똑같이 타인의 보통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면서 서로에게 소나무가 됐으면 좋겠다. 그럴 때만이 우리들의 이야기가 버려지지 않고, 특별한 이야기로 재생되어 노래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
2020년 상반기 국내 불안장애 상담 건수가 2019년도 전체 건수보다 45% 증가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여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과 외로움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척하지 말고 주위에 조용히 혼잣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지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