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을 뚫고, 쿨하게
사과 받는 것을 배운 적 있는가
코로나 창궐 1년이 훌쩍 넘은 요즘에도 아침 지하철은 항상 만원이다. 미팅이 있는 날이라 구두를 신고 인파에 묻혀 총총걸음으로 3호선 환승을 위해 이동 중이었다. 계단을 오르려는 데, 앗, 누군가 내 가죽 구두코를 꾸욱.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나처럼 황급히 걸어가던 여성분이, “아, 정말 죄송해요. 죄송합니다,”라며 연신 고개 숙여 사과한다. 급히 걷다 보니 내 발을 밟은 모양이다. 괜찮다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치는 찰나, ‘정말 미안하신 거 같네,’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중1때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던 상황이 떠오른다.
햇빛이 쨍쨍하게 비추는 어느 화창한 토요일 정오(나는야 주6일 수업제 세대). 중학생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이하는 주말. 짧은 오전 수업이 끝나고 즐겁게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빨간색 신발주머니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중3 언니들이 서로 장난을 치던 중 지나가던 키작은 여학생을 의도치 않게 친 것이다. 내가 놀라 쳐다보니, “아, 미안해요,”라며 다소 격식을 차려 사과한다. 그런데 그 사과 당사자들이 좀 의외였다. 딱 봐도 껌 좀 씹는 언니들은 눈썹도 밀고 염색한 앞머리를 핀으로 넘긴 깻잎 헤어스타일에, 무릎에서 한 뼘 이상 내려온 교복치마(당시 다른 학생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그들만의 스타일)를 입고 있었다. 코흘리게 중학교 신입생에게 하늘과도 같이 높으신 대선배들이 내게 사과를 하다니, 왠지 으쓱한 기분에 좀더 진한 사과를 받아내고 싶어졌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좀더 사과해보라는 눈빛으로 그들을 계속 쳐다봤다. 앗, 그런데 돌아오는 건 급변한 그들의 태도. “내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즉시 눈을 내리깔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줄행랑 쳤다.
집으로 돌아와 식은땀을 닦으며 나는 생각했다. ‘타인이 사과를 하면 적당히 받을 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남동생이 5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다.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고 동생 친구들을 통해 생사확인만 됐다. 가족들의 걱정이 고조에 달하던 6일째 저녁, 동생이 돌아왔다. 나는 늦은 저녁에 집에 들어갔는데 동생이 집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자 동생방으로 들어가 동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네가 이 집 식구가 맞아? 버르장머리 없이 연락도 안하더니 집에는 왜 들어왔어?”
처음에 미안하다고 말했던 동생을 향한 나의 공격은 계속됐다. 급기야 동생은, “나보고 이제 와서 어떻게 하라고!!!”라고 서럽게 울분을 터뜨렸고, 그게 부족했는지 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목재 가벽이 움푹 폐이고 동생 손등에는 피가 흘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한껏 쫄은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엄마는 나에게 나즈막히 말씀하셨다.
“사람을 혼낼 때는 쥐구멍이라도 뚫어 놓고 혼내야 해. 집에 들오자마자 나한테 크게 한 소리를 들었고, 퇴근하신 아빠에게 크게 한 소리, 그리고 방금 언니에게 크게 한 소리 들었었는데, 네가 들어와 방금 또 한 바탕 나무랐으니…”
듣자 하니, 동생은 여자친구의 동생이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했는데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 병원에서 며칠간 생활하며 그 친구를 도왔다. 가족들에게 무얼 어떻게 이야기할 줄 몰라 우물쭈물 하다 보니 5일이 지나갔다고 한다. 그때가 동생이 군대 가기 전이니까 동생 나이 20대 초반, 내 나이 20대 중반이었다. 자초지정도 물어보지 않고 내 입장에서 훈계 공격만 했으니 어줍지 않게 어른 행세를 한 거다.
실수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타인에게 사과하는 예의를 배운다. 놀랍게도 사과를 받는 법은 배움의 대상으로 강조되지 않는다. 사과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도 있는게 대원칙인데, 참으로 비대칭적인 교육이다.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나아가지 못하고 그 상황에서 계속 피해자로 남아 내가 억울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계속 사과를 받아야 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당연해야 한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계속 몰아붙이면, 사과하는 쪽은 선택의 여지 없이 사지로 몰려 둘간의 앙금만 더 깊어진다. 내 동생의 피흐르는 주먹이 그 결과다. 쥐구멍을 열어두고, 쿨하게, 사과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사건이 사고로 남지 않고 교훈이 된다.
모든 사람들의 가장 확실한 미래는 죽음이다. 그런 확실한 미래를 알면서도 가끔씩 티끌같이 조그만 일에 분노하고 타인의 사과를 적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옹졸하고 궁색하다. 매번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내가 열어 두었어야 할, 바로 그 쥐구멍으로 숨고만 싶어진다. 아마도 이런 <옹졸궁색-후회-반성> 굴레의 반복 역시 숙명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내 자신에 대한 사과 역시 쿨하게 받아들여야 교훈이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