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귀한 자식
사회 공동의 잔소리가 필요한 때
약 15년 전 12월 추운 겨울.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집에 왔는데 속상한 표정의 엄마가 그날 이야기를 하셨다. 대학생 막내 아들이 빵집 아르바이트를 한다길래 궁금해서 몰래 상점 근처에 가셨단다. 그날 남동생에게 주어진 임무는 코믹한 캐릭터 분장을 하고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쿠키를 나눠주며 크리스마스 이벤트 홍보였다. 그런데 마침 엄마가 보지 못할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어떤 젊은 여자가 동생에게 삿대질을 하며 왜 먹을 것으로 어린 아이들 호객행위를 하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 것이다.
“당장 달려가 욕을 맞받아 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왔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을 보면 동생 생각이 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홍보물을 꼭 챙겨 받는다고 하셨다. 나 역시 무심코 피해 지나갔던 전단지를 왠만하면 받는다. 혹시라도 그냥 지나치게 될 때는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누나인 내 마음도 이런데 막둥이가 추운 겨울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서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몇 년 전 식당에서 서빙하는 젊은이들에게 반말과 갑질 행동을 하는 일부 무개념 사람들이 크게 이슈화된 적이 있다. 심지어 “남의 집 귀한자식”이라는 문구가 프린트 된 티셔츠까지 상품화됐고, 실제 여러 식당 종업원들이 그 티셔츠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일부 부모의0유별난 자식사랑과 갑질 뉴스는 이제 새롭지도 않다. 수많은 피갑질의 대상의 피눈물은 어떠했을고.
첫 직장 보스는 회사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본인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뛰어난 업무실적을 가지고 있었고, 실수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해 덩치가 산만한 사람도 그에게 한번 잘못 걸리면 눈물을 쏙 빼놓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두 딸의 아빠가 된 이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모두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그의 둘째딸이 걷기, 말하기 등 모든 면에서 성장이 너무 뒤쳐져 병원에 다니게 된 것이 그 이유였다.
“내 자식이 내 맘대로 안되고 실수하고 남들에게 뒤쳐지는 걸 보니, 직원들이 실수를 하는게 다 이해가 되더라구…”
후의 그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부모가 되면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내 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남의 자식은 내 알 바 아니라는 그룹, 그리고 내 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니 남의 자식도 그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룹. 첫번째 그룹은 자신의 자녀를 세상의 중심에 둠으로써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기준이 더 편협해진다. 반면 두번째 그룹은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각 가정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더 넓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룹핑을 해보고 나니 우리 엄마와 전 보스는 다행히 모두 이 두번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첫번째 그룹의 경우 부모가 되고 식구는 늘어 삶은 분명히 더 풍부해 졌을텐데, 사고의 폭은 더 좁아졌으니 퇴행적이고 심지어 억울한 비극처럼 생각된다.
사람은 끓임없이 배워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은 보이지 않는 “남의 집 귀한자식” 티셔츠가 여기저기 다시 등장하길 바란다. 우리 모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우주의 중심이 되고 그 중심에는 우위가 없다는 것을 끓임없이 일깨워주는 사회 공동의 잔소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