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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케 Jul 26. 2024

릴리의 정원

챕터 1. 릴리의 다락방


릴리의 다락방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멈춰 있었다. 릴리가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락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조용한 다락방에서 릴리는 자신의 숨소리만 들을 수 있었고, 다락방의 고요을 바라보았다. 정원에서는 자주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지나갔다. 그때까지 릴리는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평소처럼 일상을 보냈다. 릴리는 주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정원 밖으로 날리곤 했다. 릴리가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창문 앞에서 사라지곤 했는데, 곧 정원 밖에 나타나 날아다녔다.


어느 비 오는 날, 릴리는 정원 울타리 밖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그동안의 시간이 쏟아져 흘러갈 듯한 표정의 작고양이를 발견했다. 릴리는 한동안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책을 집어 들고 침대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털과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정원 울타리 밖에 있던 작은 고양이를 바라보던 릴리의 기억은 그녀가 책을 고르던 책장 바로 에 숨겨진 투명한 책장에 기록되고 있었다. 릴리가 숨겨진 책장을 발견하고 그날의 기록을 읽게 되는 날은 아직 멀었다.


어느 날, 릴리는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호기심에 창문을 열고 듣고 싶었지만, 소심한 릴리는 창문을 열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가서 목소리를 더 잘 들으려 했다. 소리는 희미하고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한 문장은 분명히 들렸다.


 "몇 살이니?"


시간이 흐르지 않는 다락방에서 릴리가 처음으로 종이비행기에 시간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를 적은 날이었다. 시간이라는 단어가 릴리의 다락방에 기록된 후, 릴리는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동시에 릴리의 다락방에도 시간이 생났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릴리는 하나의 호기심이 생겼다. 창문 밖에서 그녀의 나이를 물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릴리는 창문 곁에 귀를 대고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릴리는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목소리를 듣기 전에는 단순히 다락방에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는데, 목소리를 듣고 이후 감정의 변화를 경험한 후, 그녀는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예전에는 단순했던 일들이 이제는 매 순간이 흐르고, 매 초가 똑딱이는 것을 느끼면서 고문과도 같아졌다.


매일 아침,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희망으로 일어났지만, 결국 잠들 때까지 실망만 할 뿐이었다. 실망의 나날들계속되면서 느껴지는 고통은 릴리가 다시는 눈을 뜨지 않겠다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만들었다. 시간의 무자비한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깨어났을 때, 릴리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무리 오래 잠을 자더라도 눈을 뜨는 순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으며, 눈을 감기 전의 시간은 한순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넌 누굴까? 왜 나를 부르는 거니? 소리가 들려'


나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릴리는 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걸. 릴리가 듣는 소리는 무슨 소리인 걸까? 난 들을 수 없다.


'잠에서 깨고 싶어. 내 소리와 같은걸.'


떨림. 릴리는 떨고 있다.


'말하기가 무서워.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나는 널 알아차릴 수 있어'


내 모습이 변해도 알아차리는 릴리다. 내가 어떤 상태든 ,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


'난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거든.'


"....."


그 말은 내가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럼 나는 살아있는 건가? 네가 누구인지 궁금해. 너를 만나러 가야겠어.'


릴리는 나를 만나러 온다면서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다락방 창문은 여전히 단단히 닫혀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릴리를 내려다보는 존재로, 릴리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지만 릴리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를 만나러 오겠다니.. 사실은 나도 릴리가 나를 찾으러 와주었으면 한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인걸..릴리는 앞으로 나에게 늘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릴리는 내가 있는 여기까지 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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