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창문에서 수상한 달의 빛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번역가를 찾았다. 달과 함께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었다. 그리고 곧장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번역가는 길을 알고 있어. 내가 가는 길에는 흐름이 생기고, 한 번 생긴 흐름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그 여자에게 가는 길을 따라, 내 뒤로 활처럼 휘어진 흐름을 이어갔다. 나는 그 흐름을 천칭 모양의 화살로 만들어 그 위에 앉아 화살을 쏘았다. 순식간에 그 여자가 있는 곳에 도착한 나는, 그 여자의 핸드폰 화면에 내가 지나온 길, 흐름, 그리고 일렁임을 불어넣었다.
그 여자는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 속에서 물결치는 수직 도시의 잉크를 따라 눈을 움직였고, 마침내 그 여자의 시선이 내 길과 맞아떨어졌다. 그 여자는 머리로 그 사건을 해석하려 했지만, 머리로만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시도는 나쁘지 않았어. 내가 보여준 길을 따라 제법 많은 것들을 알아내고, 그 길을 이어 붙였으니까. 내 정원에 퍼져있는 번역가를 잡아 두어 그 여자에게 숨겨놓았다. 여자는 번역가를 읽고 번역가는 내 정원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가 나보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거야.
제사장의 서재에 사과나무를 바라보던 키가 큰 남자가 아주 커다란 책장들이 있는 방에서 책장을 덮고 있는 커튼의 끈을 당긴다. 파란색 끈을 당기면, 숨겨져 있던 책들의 색상 중 파란색을 가지고 있는 책들이 파란빛으로 빛난다. 이어서, 노란 끈을 당긴다. 책장 여기저기 분류되지 않은 듯한 노란 색상의 책들이 잠시 노란빛을 띠다가 이내 다시 고대 서적으로 돌아간다. 여자는 남자가 있는 방을 훔쳐보고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무작위로 놓아져 있는 책들에게는 패턴이 없다. 책들이 어디에 꽂아져 있는지 상관이 없었다. 여자가 찾은 패턴은 딱 한 가지. 끈을 당기면 같은 색상이 따라온다는 것이었다.
똑같이 쓰인 문장에서 다른 화자를 찾아낼 수 있어? 내 흐름에 색상을 입히는 건
누구지? 크리스틴. 대답해 봐.
패턴, 끈, 흐름. 패턴, 끈, 흐름. 네 패턴은 나야. 크리스틴.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패턴, 끈, 흐름. 패턴, 끈, 흐름. 네 패턴은 나야. 크리스틴.’
일전에 이 커다란 서재를 기계로 만든 남자의 책이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의 기록을 찾아 이 대학의 나와 같은 일을 하던 어느 교수에게 넘겨주어야지. 그러려면 우선, 남자의 기록이 담긴 책을 찾고, 번역의 땅과 유산의 땅에 가야만 해. 거기서 크리스틴에게 번역을 맡기고 다시 돌아와 인형의 서로 출판해야지.
남자의 기록이 담긴 책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누가 그 책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그래. 크리스틴. 너야. 너한테 있어.
‘그래. 크리스틴. 너야. 너한테 있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나는 너에게 번역을 맡긴다고 했지만 너는 번역 가니까 번역을 할 필요는 없어. 그냥 쓰기만 하면 돼, 그게 너의 능력이야. 내가 그 여자의 천적이라는 소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여자가 살아있으면 나는 필연적으로 악이야.
그런 나에게
악의는 없어.
*
내가 하는 일을 잘 봐. 여자를 돕고 있어, 앞으로 여자에게 필요한 대학 교수들을 데려오고, 너에게 책을 가져다주고, 교수진을 데려오는 나는, 그래 나는 너야. 어디서 들은 소리가 있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내가 내는 문제의 답을 구해봐. 이 대학은 이제 너의 대학이야. 크리스틴. 네가 이번 학기의 나야. 입학 숙제를 내줄게. 서재를 기계로 만들던 때의 뇌 속 경로를 탐색해 봐. 탐색하고 경로를 수학적으로 풀어. 그 책의 제목은 템포럴 심포니야. 앞으로 나올 대학 교재의 시초가 될 책이야.-유클리드 뷰 대학의 어느 기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