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두려운 자들을 위해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2011년 개봉한 한국 영화 [최종 병기 활]에서 주인공 남이는 누이 자인을 죽일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두 눈 부릅 뜬 채 두려움에 맞서, 마지막 화살로 적장의 목을 뚫는다.
막연한 불안, 왜?
이 대사는 오늘날 사람들이 막연하게 느끼는 보이지 않는 미래, 실패와 좌절이 기다리고 있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다룰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작게는 인간관계부터 크게는 소외와 죽음에 대한 공포에 이르기까지 개인을 불안감의 나락 속으로 빠뜨리는 것들은 사소한 듯 보여도 사소하지 않은 것들에서 비롯되었다. 인류 역사를 살펴 보았을 때 현대의 우리가 어느 세대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 수록 증가하는 우울증과 불안 증세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과거와 다르게 우리는 아는 것이 너무 많다. 물론 범우주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한낱 먼지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존재일테지만 적어도 지구에서는 인터넷 덕분에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에도 노출될 정도로 아는 것이 많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보이는 누군가의 모습이 좋은 삶이자 올바른 삶이자 행복한 삶으로 보인다. 기대치가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타인과 스스로를 비교함에 따라 찾아 오는 열등감에서 두려움이 비롯될 때도 있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스스로를 탓할 때다.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는 건 쉽다. 하지만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기주도적인 생각을 하라,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라'는 등 역설적이게도 자율성을 강요 받는다. 때문에 높아질대로 높아져버린 삶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납득할 수 없다.
고민보다 Go
그렇다면 물어보자. 본인이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좋아하는 것, 지향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 진정으로 혼자 고민해 본 적 있었는지. 두려움은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나 자신의 탓으로 돌려 버리기 때문에 나타난다. '내가 이걸 했더라면... 내가 이걸 하지 않았더라면....' 와 같은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의 잣대를 세워야 한다. 기준점이 있어야만 무엇을 하고 안 하고를 선택하고, 이후 선택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했다면은 실천해야 한다. 내가 옳다고 결정한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 정말 그 아무도 모른다. 내가 성립한 가치관을 따른 선택을 했다면 열심히 선택에 책임을 다하는 것. 최선을 다한 그 땀방울 속에서 후회는 희석되어 사라질 것이다. 적어도 실천에 최선을 다했다면 주어진 결과를 수긍할 수 있을테고, 내일의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선택을 바꾸든 실천을 바꾸든, 어느 지점에서든 변화를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고민보다 Go라는 말은 생각없이 일단 행동부터 지르고 봐라는 의미가 아니다. 과도한 고민에 빠져서 무언가를 선택한 스스로를 또 다시 의심하지 말라는 것. [최종 병기 활]의 남이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누이를 지키기 위해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그의 삶은 영화 내내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누이를 지키는 것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저 없이 스스로의 선택을 믿고 활 시위를 당겼다. 그 자신의 죽음보다 누이의 죽음이 두려웠을테지만 스스로를 옭아 매던 족쇄를 풀어 헤치고 사수의 가장 큰 벽, 바람을 극복해낸다.
위의 사진에서 공을 가진 선수가 택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정답은 알 수 없다. 한 명의 수비수가 그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 드리블로 수비수를 돌파할지, 주위 동료에게 패스를 줘야 할지. 경기의 흐름에 따라 정답에 가까운 선택지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선택지는 명확하다.
어쩌면 '두려움을 직면하라'는 백 마디 말보다도 이렇게 스포츠의 예시를 들 때 그 의미가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한 단계 더 높은 클래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부족과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숱한 두려움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숱한 경험과 노력 끝에서야 이루어 질 것이다. 경기장에서의 일관성과 중요 경기 활약도라는 수치도 두려움 컨트롤을 해낸 선수들을 위한 수치일 테다.
평소에는 갑질과 열정 페이를 옹호하는 뉘앙스의 표현이어서 싫어하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자기 주관을 세우는 데 동기 부여하기에는 이것보다 좋은 구절이 없는 듯하다. 나 스스로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려는 의지 끝에서 지금의 나를 넘을 수 있다는 것. 두려움의 심연 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결국 나의 초상이니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니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