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어색한 현수막

2024년 3월 25일 저녁에

by 리르리안

비가 오네요. 날이 참 흐리기에 이른 오후에도 방의 불을 켰습니다. 갑자기 뭔가 우울한 느낌이 들었기에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고 기존에 쓰던 키보드를 넣고 창고에 있던 무선 키보드를 꺼냈습니다. 게임할 때는 그렇게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키보드의 감각에 집중하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저번 글 말미에서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저번 주말에는 새벽 첫차를 타야 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버스 터미널까지 가야 해서 시간이 급했지만, 첫차에 첫차를 반복해 갈아타고 가니 다행히도 시외버스 첫차를 여유가 있게 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위치 상 수원터미널을 주로 이용합니다. 예전에 안산에 살 때도 — 집 앞에서 수원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있었고 안산터미널보다 가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 수원터미널을 이용했었죠.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20년 넘게 이용하다 보니 내부는 수많은 편의시설로 매번 변화를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 정겨운 느낌, 내 집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길, 이렇게 이른 아침이 아니라면 보통은 터미널에 붙어있는 대형 상가의 내부를 지나서 가지만, 이른 시간에 열려있을 리가 없으니 건물을 돌아 터미널로 향합니다. 그런데, 상가 입구에 대문짝만 한 현수막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업시간 안내
오픈시간
오전 10:30


뭐, 쇼핑몰에서 현수막 걸 수도 있지 않나 싶지만, 저는 문을 막듯이 걸어둔 이 현수막에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에 왔을 때는 본 적 없던 것이었거든요. 생각해 보니, 다른 어느 쇼핑몰에서도 이렇게 걸려있는 걸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보통이라면 투명한 유리문 입구에 흰색 스티커로 영업시간을 표시하거나, 현수막을 거는 경우라면 입구를 막듯이 걸어두는 게 아니라 입구 위쪽 빈 공간에 걸어서 24시간 떼지 않고 영업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보안을 위해서도 아니고 영업시간을 알려주게 위해 매일 문에 현수막을 걸어두는 행위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추측해 보면 별거 아닌 일이긴 합니다. 쇼핑몰이 터미널에 붙어있기 때문이죠. 보통 사람들이 더위나 추위를 피해 건물 안을 통해 터미널을 간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이른 아침에도 쇼핑몰 입구를 향해 자연스럽게 향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멀리서부터 '우리 문 잠겨 있습니다'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인 것이죠. 잠겨있는 문을 손님들이 열려고 하면서 나오는 파손이나 상해의 문제도 이 현수막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매일의 귀찮음도 숙달되면 금방 괜찮아질 것이고요.


그렇다면 왜 제가 저 현수막을 보며 어색함을 느꼈던 것일까요? 단순히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겼다고 느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원래 현수막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제가 저 상황에서 위화감을 느낀 이유는 아마, 원래는 없어야 할 게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는 어색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서 그 느낌이 천차만별입니다. 신을 열심히 부르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도 교회에서 하는 것과 지하철 1호선 안에서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다른 느낌을 줍니다. 전자는 정말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후자는 지하철 문틈으로 들어오는 소음보다도 더 큰 소음으로 들리며 불편함을 느끼게 되죠. 그 불편함, 원래는 지하철에서 들리면 안 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죠. 위화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행동이 오히려 '어디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위의 문에 걸린 현수막이야 아침에 터미널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어색한 위치임에도 —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어색하다고 느끼지도 않을 정도의 위화감이지만 —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데, 지하철에서 전도하는 남자는 그 의도가 하나님의 나라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이해심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탄탄하지 못합니다. 장소에 맞지 않는 행동은 결국 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요소를 필요로 하고, 그 결과마저도 정당하다고 볼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겠죠. 그것이 실질적인 장소든, 아니면 온라인 커뮤니티 상의 장소든 말이죠.




이제 3월도 다 갑니다. 그래도 2~3일에 하나씩 글을 써보자고 생각을 한 것이 아직은 잘 지켜지고 있네요. 앞으로는 연재글도 생각을 해보고 싶은데 주제를 잡기가 참 힘들어서 일단 당분간은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써볼 것 같네요.


리르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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