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고 나서야 보이는

2024년 3월 12일 이른 오후

by 리르리안

비가 올 듯 한 날씨에 빗방울 하나 보이지 않는 날입니다. 어디는 비가 내리고 있겠지만 여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지는 않네요. 미세먼지 농도는 보통으로 나오지만, 날이 흐리다 보니 유난히 뿌옇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어제는 수원의 새로 생긴 복합 쇼핑몰에 다녀왔습니다. 평소에도 집, 공원 산책,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로 이어지는 평범하고 지루한 동선을 깨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편인데, 이제는 평일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역시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기대감을 안고 입구에 들어서니, 대형 전광판이 저를 반겨줍니다. 그 모습에 한번 더 매료되어 가게 안을 천천히 돌아다녔습니다. 커피 한 잔을 왼손에 끼고, 머리와 두 눈은 계속 두리번거리며 시골에서 갓 도시 구경 나온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중간층을 가득 메운 도서관에 한번 더 놀라고, 서울에 놀러 갔을 때만 볼 수 있던 몇몇 가게들이 당당하게 들어와 있는 것에 한번 더 놀랐습니다.


그렇게 한참 돌아다니다 벤치에 잠깐 앉아 정신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든 감상은 이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랑은 못 오겠구먼...'


왜냐면 복잡했기 때문이죠. 구경이 목적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명확하게 쇼핑을 목적으로 오기에는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보통 부모님이랑 이런 데를 오려면 그런 목적을 갖고 와야 하는데, 여기는 그렇게 왔다가는 복잡함에 눌려 제대로 쇼핑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주말이라면 절대 오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하물며 입점한 매장이 백화점처럼 '1층에는 잡화, 2층에는 여성복…' 이렇게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에스컬레이터에 있는 안내는 다른 쇼핑몰과 마찬가지로 윗/아래층에 뭐가 있나 정도만 나와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럴 때마다 찾아보게 되는 '층별 안내도'가 유난히도 안 보였습니다. 일단 입구에서는 못 봤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면서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으니 '전략적으로 층별 안내도를 안 만들어두었나?'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있었습니다. 층별로 비슷한 위치 — 쇼핑몰 중간에 하나씩 있고, 그 외에도 군데군데 QR코드를 걸어 두어 스마트폰으로 층별 안내도를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이 8층짜리 건물의 옥상 펫파크를 갈 때까지도 몰랐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다다라서야 그 옆에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이게 왜 안 보였던 것일까?


놀라운 점은, 한 번 그게 보이고 나니 어느 층을 가도 이 QR코드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올라갈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가게들을 보느라 지나쳤던 것일까요, 아니면 우연히도 이게 없는 곳만 골라서 다녔던 것일까요?


저는 사실 저렇게 헤매는 것이 싫어서, 저런 건물이나 공원 같이 한 장소를 돌아다녀야 할 때는 반드시 그곳의 지도를 먼저 보고 움직입니다. 여행 자체는 발 가는 대로 가지만, 발이 닿은 곳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죠. 좋게 말하면 꼼꼼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한 사람입니다. 어떨 때는 미리 살펴보고 동선을 적절히 짜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시간 맞춰 나오는 것이고, 어쩔 때는 지도와 설명만으로도 뻔히 예상이 되는 곳이라 구경도 하지 않고 가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제 상황처럼, 일단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눈앞에 지도가 없더라도 일단은 돌아다닙니다.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죠. 마음을 먹었다면, 해야 합니다.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할수록 한 번 한 결정은 절대 바꾸지 않아야 합니다. <스타워즈>에서 요다도 그랬죠.


"Do, or do not. There is no try."


설령 길을 잃고 헤맨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럴 때는 헤매는 행동 자체가 되게 중요합니다. 온 구석을 다 쑤시고 다닐 정도로 헤매다 보면 의외의 발견으로 기분이라도 좋아질 수도 있고, 아니면 어제처럼 진짜 지도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길을 찾고 목적지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여기까지 들어온 길이 너무 오래 걸렸더라도, 여기는 별로라는 것을 깨닫고 왔던 길 그대로 빠져나갈 수도 있죠. 이 모든 건 내가 '끝까지 헤매봤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제 나름대로 끝까지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면서 마음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 글쓰기의 끝이 '뒤로 되돌아가기'가 될지, '계속 앞으로 가기'가 될지는, 아직은 보이는 게 없는 걸로 봐서 계속 헤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이렇게 허우적대며 글을 마칩니다.


리르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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