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새벽에 쓰고 3월 14일 오후에 정리한
좋은 오후입니다. 아직 산책 겸 운동은 안 나갔고, 글을 하나쯤 써야 할 것 같은데 글감이 그리 많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가끔씩 글감이 보이면 메신저에 나에게 쓰기로 글을 남겨두곤 하는데, 마침 써둔 메모 중에 이야기를 풀기 좋은 것이 있어 오늘 가져와봅니다.
저는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일 할 때 특별히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따로 지시할 것도 없이 익숙한 업무에, 시끄러운 쇼케이스와 냉장고에서 나는 소음을 안고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이어폰을 끼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주로 유튜브에 올라오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편인데요, 그 라디오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패널 두 명이 나와서 다양한 퀴즈를 푸는 코너를 진행합니다. 얼마 전, 그 라디오에서 퀴즈로 이런 내용을 냈습니다.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에서 조사한, 알바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호칭 1위는 '저기요, 여기요'
(출처: https://corp.alba.co.kr/brand/MediaReportView.asp?idx=3623)
이걸 들었을 때, 저는 그냥 무덤덤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손님이 반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학생'이라고 해도 좋고, '아저씨', '삼촌', '선생님', '저기요' 등등등 뭐라고 해도 좋지만, 생각해 보면 저런 호칭보다 그냥 '저기요, 여기요' 하는 게 가장 무난하고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과 손님 사이의 가장 적절한 간격을 보여주는 칭호가 아닐까 싶었죠.
나중에 더 찾아보니,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2020년에 언어 예절 안내서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에서 손님을 부를 때 상호 간의 사회적 관계를 직접 드러내지 않아 손님과 직원 모두에게 편안하게 사용될 수 있는 '여기요, 저기요'를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보통 친근하게 말 걸고 싶어서 쓰는 '총각', '아가씨', '삼촌/이모', '언니/오빠/형/누나' 등의 호칭은 손님이 갖는 힘을 드러낼 수 있는 호칭으로 들릴 수 있고, 존중의 의미로 쓰는 '선생님', '사장님' 등은 듣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들이 덜 선호하게 된다고 합니다(물론 위 설문조사에서 2위가 '사장님', 3위가 '선생님'이었습니다).
집에서 저 내용을 찾아보고, '과연 나는 뭐라고 불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부르던 호칭을 다시 떠올리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옷을 사러 간 곳에서, 저녁밥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친구랑 만난 술집에서, 팝업 스토어나 행사 같이 사람들과 아르바이트가 북적북적한 곳까지 다양한 곳에서 직원을 부르는 제 모습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점은, 저는 생각보다 장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저 역시 '저기요'를 씁니다. 무의식에서도 이 호칭이 가장 쓰기 쉬웠다는 뜻이겠죠.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점원뿐만이 아니라 그냥 길 가다가 사람을 불러야 할 때도 '여기요, 저기요'를 쓰고 있었습니다.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여러 호칭보다 그냥 '저기요!' 혹은 '저기...' 하는 게 가장 편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저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을 부를 때는 '저기요'라는 호칭 이후에 나올 말도 존댓말로 자연스럽게 이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걸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내용 역시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쓰던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이래서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것이지, 이게 진짜 제 마음인지는 저도 모르고 제 부모님도 모르고, 이걸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모를 것입니다. 뭐,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사용해 왔다는 것은, 아직은 일상생활에서는 남들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있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 호칭이 명확하게 달라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식당과 술집입니다. 식당에서는 주로 '사장님'을 부르는데요. 이건 비교적 원인이 명확합니다. 1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술집도 많고, 직원을 한두 번 불러야 할 곳은 아니다 보니까 최대한 존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호출벨로 부르거나 아예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심지어는 서빙도 로봇이 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점원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곳도 많죠. 진짜 서빙 로봇이 더 보급화되면 '진짜 사람'은 사장님만 있어서 사장님을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의식적으로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호칭으로 불렀던 직원이나 사장님이 저를 대하는 서비스의 만족도가 가장 좋았기 때문입니다. 경험에 의한 것이죠.
한편, 저는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많이 씁니다. 주로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많이 쓰게 됩니다. 전화기에 대고 '저기요'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명확하게 직함 같은 '딱 떨어지는 느낌의' 호칭으로 부르고 싶은데, 그럴 때 상대방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호칭이 '선생님'이라는 것이 제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직원의 입장일 때 손님들을 '선생님'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이 입에 붙지도 않고, 점원이나 직원도 아닌데 '사장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으니, 가장 괜찮은 칭호를 선택한 것이 위와 비슷한 이유로 '선생님'이 된 것이었죠. 거기에 대학교 때부터 전공 때문에 실습이나 인턴을 나가서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있겠네요. 물론 제대로 서비스 관련 직종에서 일을 했다면 당연히 '고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떤가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저처럼 하나로 통일된 호칭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다양한 호칭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호칭이지만 이 기회에 한 번은 어떤 말을 쓰는지 의식해 보고, 너무 상대방을 무시하는 호칭을 쓰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리르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