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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Jan 13. 2024

내 나름대로 추모했다

불의의 사고였다. 세탁기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엄마가 햇빛을 잘 받으라고 놔둔 새싹들을 뚜껑을 열면서 튕겨져 나간 것은. 정말 신기한 건 싹이 나지 않은 지피 펠렛은 그대로 있고 싹이 난 두 개의 지피 펠렛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거였다.






내가 이상한 낌새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이미 사고가 벌어졌고 엄마는 긴 빗자루로 세탁기 뒤로 넘어간 지피 펠렛을 꺼내고 있었다.






격해진 마음에 울면서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고 내 새싹 어디 갔냐고만 중얼거리면서 어떻게 식물을 얹어둔 커다란 책상도 힘으로 밀어내고 세탁기도 옆으로 막 밀어내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신기했던 게 한없이 무거워 보였던 큰 책상도 세탁기도 힘없이 밀쳐지더라. 그 애들은 없었다. 엄마가 막 휘저어서 우악스럽게 꺼내는 걸로 보였던 세탁기 뒤부터 바닥에 흩어진 흙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나중에 엄마가 그런 건 아니었다고 꺼내려고 쓸었다고 했었지만 내 눈에 마찬가지였던 마치 짓이기는 것처럼 보였던 빗자루 솔 밑에도 살짝씩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눈으로 가까이 훑어보고 세탁기 밑도 무슨 그런 힘이 있었는지 비스듬히 들어서 세탁기 바닥도 샅샅이 훑어보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벌레의 시체와 잔잔한 흙밖에 없었다.




엄마가 나름대로 자신이 한 일을 무마하려고 그랬다는 건 알겠는데 내 눈에는 짓이기는 것처럼 보였고 그만 나와줬으면 좋겠고 그런 식으로 짓이기면 떨어져서 아직 살아있었어도 다 죽었겠네…그런 식으로 무신경하게 할 거면 대체 왜 안 나오는 거야! 하고 그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면서 나오라고, 나오라고! 울면서 소리 지른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몇 가지 장면으로만 기억이 나지 드문드문 비어있고 기억이 다 나지도 않는다. 주저앉아서 흙 다 묻는데 정신없이 엉엉 운 기억도 있고.




지피 펠렛 두 개나 떨어졌는데 싹이 안 난 세 개는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그거 보고할 말을 잠시 잃기도 했지만 그것도 새싹 있는 지피 펠렛 중 하나만 그런 식으로 무신경하게 주워놓고는 다 주운 거 아니냐면서 거기에 대고 아니라고 하니까, 저 뒤로 떨어졌으면 못 산다고 이미 죽은 거 아니냐면서 하는데 속이 터졌다.






그냥 도와달라고도 안 하고 진짜 무슨 힘이었는지 힘으로 세탁기를 막 악쓰면서 꺼내니까 새싹 두 개는 아무리 찾아도 온데간데없었지만 옆에 지피 펠렛 하나 떨어진 걸 발견했다.





다행히 그건 온전하게 떨어져서 흙이 흩어지지도 않았고 새싹도 작아서 그런지 무사했다. 겨울인데 베란다 추운데 내가 발견 못하고 그대로 방치됐으면 어쩔 뻔했어? 내가 그냥 그 말 믿고 가만있고 포기했으면 그냥 죽었겠네? 속으로 삼키면서 조심스럽게 꺼내고 조금 더 찾아봤다, 혹시 있을까 봐.





너무 슬프면 화도 안 난다는 걸 알았다. 내가 햇빛 보여준다고 그 위에 올려두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과 아침에 봤던 새싹이 많이 자랐었는데 아직 덜 자랐으니까 조금 더 자라면 사진 찍어야겠다고 사진 안 찍어둔 게 후회됐다.




조금 있다가 일정대로 기분이 말이 아니고 넋이 나가서 기운 없이 어찌어찌 같이 바다 보고 오고 감정 좀 토로해서 말하고 먹고 싶은 거 좀 먹고 오고 기분이 조금 나아져서 이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혼자 있으니까, 마음이 확 식으면서 춥고 공허했다. 오전에 엄마가 싹 다 세탁기 밑을 청소하고 같이 나섰던 걸 기억하는데 괜히 한 번 더 가서 세탁기 뒤를 살펴봤다. 이미 없을 걸 아는데도. 결국 내가 못 찾았으니까.






 나중에 아직도 그랬냐고 후유증이 크네, 하고 지나가듯이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말에 정말 열이 뻗쳤다. 아직 내 식물이 죽은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반려동물을 동물별로 떠나보낸 분들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걔네 동물이잖아, 왜 아직도 힘들어해? 죽은 지가 언젠데?라고 묻는 말이 정말 악의 없이 말하는 말 그대로의 뜻만을 내포하는 순수한 궁금증이더라도 숨이 턱턱 막힐 거야, 진짜.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힘들다.






새싹 두 개가 난 지는 이제 이틀이었다. 겨우 식물 가지고 뭐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이건 마음속으로 간직하는 혼자만의 장례식이었다. 오늘은 그래서 계속 검은 옷만 입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 추모했다. 인간으로 태어나길 바란다고 말하기에는 말이 ‘인간’에서 턱 막혔는데 내가 인간으로 살아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꽤 많이. 다른 걸로 태어나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삶이 과연 좋을까? 모르겠더라. 그럼 안 태어나는 게 차라리 나은 거 아닌가, 까지 생각이 흘러가다가 그냥 식물별에서 잘 지내라고 생각했다. 식물이 말라죽는 것과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사라지는 건 너무 달랐다. 전자는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던 건데… 후자는 아까까지도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그게, 너무 눈에 선했다. 부디 평안하길 바란다.




자고 일어났다. 지금 시각은 새벽 1시가 조금 지났다. 이제 좀 웃음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조금 이성도 돌아왔다. 아마 엄마도 어쩔 수 없었겠지, 라고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 거 보면. 엄마가 어제 말도 잘 못 붙이고 눈치 보셨다. 어제 내가 짠했다는 말씀도 하셨고 말씀은 가끔 막 하시고 행동부터 나가시는 편이지만 엄마도 마음이 여린 분이었다. 그렇게 새싹을 떨어뜨리고 신경 많이 쓰셨다는 게 이제 마음으로 납득이 되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마음으로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겠다. 마음은 지금 막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성과 감정은 이렇게 따로 논다. 내일은 아니 지금부터 오락가락했던 감정 기복과 함께 머리가 멍하고 아파서 이날 전혀 손도 못 댔던 일과 어떻게든 조금씩 하다가 멈췄던 일을 다시 진행해야겠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내가 설령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하지 말아버릴까 싶을 정도로 우울하다 해도. 하기로 마음먹었던 건 내가 가졌던 그 마음이 변질되지 않는 한 기어서라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어제는 글도 영상도 올리지 못했다,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살아온 시간 동안 내게 일어났던 거의 모든 일들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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