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쓰세요

by 릴랴

한참을 주저하고 있던 내게 어느 날 비관적인 이야기가 말을 걸어왔다.

"나를 써줘."


조심스럽게 허용 가능해 보이는 글 정도만을 표현하면서 흐릿한 표정으로 글을 마쳤다.

'이 정도면 이상해 보이더라도 전혀 이해받지 못할 정도의 글은 아닐 거야...'


막 글을 끝내자 희망적인 이야기가 바로 말을 걸어왔다.


"나를 써줘."


어수선해진 얼굴로 조금 더 흐릿하고 복잡한 낯빛으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적당하게 주관적인 표현으로 고쳐가며 아예 공감받지 못할 정도의 수준의 말들을 다 뜯어내며 글을 적기 시작했다. 몇 번의 퇴고 끝에 희미하게 이제 됐다, 하는 표정으로 글을 이야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거지? 내가 너를 만족시켰다고 말해줘."


몇 명이나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사실 같은 자였고 일전에 찾아온 비관적인 이야기나 희망적인 이야기뿐이 아닌 온갖 이야기가 뒤섞여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전부 다 써줘. "




그것은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같은 톤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팔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답을 했다.


"...아, 안돼."


이야기의 얼굴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일렁거린다. 감정이 전혀 읽히지 않은 채 이야기의 얼굴이 계속 바뀌었다.


"그렇게 하루에도 여러 번 극단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써버리면 아무것도 이해받지 못할 거야. 그건 이야기의 목적에 맞지 않잖아. 그렇게 계속 하나도 일관적이지 않고 수시로 얼굴이 바뀌어버리면 안 되는 거야... 이야기의 방향성에도 맞지 않잖아? 그렇게 되면 퀄리티도 양도 들쑥날쑥해져 버려 멋대로 보는 사람의 기대와 다른 아주 유치한 이야기도 아무 이해도, 공감도 받기 힘든 미친 것 같은 이야기도, 한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이야기도 나오겠지. 그게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수준이 아니야. 하루에도 수십 번 다른 이야기가 나올 거야. 그런 게 이해받고 공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미친 사람이 될 거야......."


이야기의 변함없는 표정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고 발작하듯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이제 나는 그렇게 표현할 줄 몰라. 다 잊어버렸어."


"거짓말 치지 마세요."


"당신은 틀렸어요. 이야기의 목적은 쓰는 자가 원하는 걸 가감 없이 누락 없이 쓰는 데에 있어요. 아무리 쓰레기 같고 보여주기 힘들고 역겹고 환상적으로 개 같든 상관이 없잖아요. 그게 얼마나 아름답고 천재적이고 기발하든 역겹고 불쾌하고 괴롭든 당신이 표현하는 것에 그게 다 같이 한꺼번에 느껴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거잖아. 이야기의 방향성은 오직 표현하는 것에 있다는 말이다."


이야기가 쏟아내는 말들은 어쩐지 답답함과 불쾌한 감정이 느껴졌고 말투가 계속해서 변했지만 그것이 욕망하는 건 순수하게 단 하나로 느껴졌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이야기여도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이 써야 하고 당신이 보고 싶은 것도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 건 아무도 써주지 않으니. 그렇기 때문에 그건 당신의 이야기가 될 겁니다. 당신이 정말로 보고 싶은 건 아무도 안 쓸 거라는 얘기였어요. 본인밖에 모르잖아요?"


꽤나 납득이 가는 얘기였기에 선뜻 고개를 끄덕인 나는 확인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너는 보고 싶구나? 그제야 만족스럽게 올라간 입가의 미소를 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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