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랬던 건지 어떤 건지 나조차도 모르는데도 그건 돌연 나를 찾아왔다. 손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그저 지금 주어진 것들을 공허하게 바라보았다. 이 모든 걸 다 해도 된다는 것일까?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어떤 것을 하기 위해서 어떤 것은 보류해야 했고 나중을 기약해야 했으며, 그것이 나한테 얼마만큼 소중한 것이든,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서 바스라져버려 재가 되어 흩어져가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게 애달팠어도,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꿈들을 잃어갔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질 정도의 마음이었으면 진심으로 원했던 것도 좋아했던 것도, 애초에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변질되어버린다고 매도하고 비웃었다. 그렇게 잊었다고 믿고 싶었던 꿈이었지만 온전한 형태는 아니었어도 결국 내게 돌아왔다. 그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그건 간절했던 마음과 절박했지만 버려두고 포기했던 진심이었다. 그 모든 감정과 감각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결국 이게 진심이었다고 그런 거였다고 인정하게 됐다면, 도망치지 못하게 꽉 붙들어놓고 싶지만, 이게 맞는 걸까.
이러는 게 맞는 걸까. 이게 맞는 길이 맞는 걸까.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자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그것은 말을 걸어왔다.
“왜 살아있는지 궁금한 거 같으니까 말해주겠는데, 네가 밟고 가고 파묻어버리고 불 질러서 태우고 재가되어 흩날리다가도 다시 뭉쳐지고 그랬어. 그도 그럴게 너는 내가 없어지지 않길 바라잖아? 엉망진창으로 하도 되살아나니까 나도 내가 좀비인지, 꿈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야.”
“…….”
“나 이 꼴로 만들어놨으면 잘 살기라도 할 것이지… 너는 또 왜 다 죽어가는데?”
“왜 돌아왔어?”
“너는 내가 돌아오길 바라니까.”
“…….”
“어휴, 네가 그럼 그렇지.”
짐짓 태평한 척 성격 나쁜 말투로 걸어오기 시작한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시선을 맞추고 있자 그건 피식 웃으면서 다시 말을 건네 왔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는 그 말속에 왠지 모를 애정 같은 게 느껴졌다.
자기 궁금한 것만 물어보고 또 대답 안 해줄 줄 알았어. 헛웃음을 지으면서 기대도 안 했다는 듯이 과장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꿈은 여전히 유쾌했지만 이전처럼 마냥 고운 말만 하지도 않았고, 오래된 친구처럼 낄낄거리기도 하고 가끔씩은 이쪽을 관찰하는 듯이 바라보기도 했다. 이전같이 순수하고 새 거 같은 느낌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가 말했던 것처럼 여기저기 불에 탄 흔적 밟혀서 뭉그러진 자국 한쪽에서는 엉성하게 다시 뭉쳐졌지만 재와 모래가 섞여있어서 조금씩 바스스하고 흘러내리는 모양새가 마치 피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지만 결국 나와 똑같다. 일그러져 있네.
"왜 안 사라지는데?"
"네가, 내가 사라지지 않길 원하잖아."
"웃기고 있네."
"아, 진짜로 너는 내가 안 사라지길 바란다고!"
그가 장난치듯이 신경질적으로 말하면서 킬킬거렸다.
"그래.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네 의사는? 내가 그걸 간절히 바랐다고 해도, 너는 사라져도 되는 거였잖아? 왜 버티고 앉았는데?"
그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라도 받았던 건지 말문이 탁 막힌 표정을 짓다가 답지 않게 잠시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이라도 한 듯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한껏 과장되게 짜증을 냈다. 말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너는 아직 시작도 해보지도 않고 나를 덮어버렸잖아.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뭐래.”
“딱히 가스라이팅하려는 건 아닌데, 너는 진짜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진짜 나나 버티고 앉았지.”
“그래, 너 참 불쌍한 거 맞는 듯. 너한텐 내가 필요한 거 같으니까 어쩌겠어. 같이 있어드려야지.”
비꼬는 투로 투닥거리면서 말하긴 했어도 이러는 건 서로 비슷했다.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농담 삼아 주워섬기는 것도 그렇고 반대로 말하고 있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는 내가 불쌍해서 남아있는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나도 네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결론이 딱히 변하지 않았다는 게 참, 웃음 포인트다.
그렇게 낡고 해졌으면서 ……미련해가지고.
결국은 나도 꿈도 만신창이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살아있었고, 일그러진 웃음을 띠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웃을 수 있었다. 살면서 우리가 많이 일그러졌구나 하고 희미하게 웃었다.
맞는지 아닌지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가 않은 거 같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다시 돌아왔다면, 이걸 잡아야지. 꽉 붙잡고 하고 싶은 데까지 가고 싶은 데까지 끌고 가야지. 내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네 분이 풀릴 때까지. 그래서 전부 없어질 때까지, 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줄곧 계속 붙잡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손을 이제야 잡았다.
……그러니까 이제 안 잃어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