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렇지. 유연하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게 틀렸을 수 있다는 걸 기본 전제로 깔아 두고 그 바탕 위에서 하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또는 내가 틀리지는 않았지만 저 사람도 틀리지 않았고 어떤 측면에서는 맞는 말을 하는 걸 수도 있다는 시선에서 지금의 내게 필요한 부분만 캐치해서 들고 와서 붙여보거나 내가 지금까지 들고 있던 건 잠시 내려두고 빈자리에 채워 넣어서 한 번 써보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틀렸든지 말든지는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게 최대한 채울 수 있는 알맞은 모양이라고 끼워넣긴 했지만 별모양 구멍 안에 원을 끼워 넣었다면 최선이었겠지만 마침 저기 오는 저 사람이 도형이 마구 섞인 말들을 내뱉는다면 그게 마구 엉켜 무슨 도형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그 안에 별모양 도형을 봤다면 그 무수한 말들 속에서 별모양을 꺼내와서 내가 채웠던 원과 별모양 중에 잠시 고민을 해보는 거지.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채워져 있던 원을 빼내면 붙어서 돋아난 새살이 뜯겨서 피가 나고 또 기껏 가져다 누른 별모양이 내 생각과 달라서 내 비워진 별모양과 같은 별모양이 아니어서 다시 빈 공간이 생기고 잘 안 들어간다고 해도 조금 더 다른 게 채워지기도 해. 꼭 맞는 모형을 찾지 못했지만 그게 당연해 보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세월에 닳고 마모되면서 조금 같은 모형이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한 가지는 나도 맞고 저 사람 말도 맞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항상 마음속에 넣고 다니는 거지. 내 세상에서 어쩌면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당연한 게 있듯 저 사람의 마음과 세계 속에서는 그게 맞는 얘기일 거야. 내가 그 세상이 마음에 안 든다면 안녕히 계세요 하고 떠나오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넘겨버리면 되겠지. 그렇다고 내 세상에서 살라고 할 필요도 없는 거겠지. 한번 이런 걸 가지고 있다고 말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만 어쩌면 상대는 물고기라서 물속에 살아야 하는 걸 수가 있어. 물 밖에서 숨을 못 쉬지. 나는 육지에 살아서 물에 빠지면 죽잖아? 계속 물속에 못 있어.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는 나한테는 맞는 말이 저 사람한테는 아예 틀린 말이 될 수가 있겠지. 내 의도가 아무리 좋았고 그를 향한 호의였든 간에 그쪽에게는 불편하고 마음은 알겠지만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남은 건 그 사람의 선택과 인생이 있는 거야. 나와 마찬가지로.
내가 내 딴에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아무리 좋은 걸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쥐어주는 순간 아무 가치도 없는 돌덩이로 치환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점을 받아들이는 거야. 재밌잖아. 나에게 있어 금은보화와 같은 보물이 그 사람 손에 들리는 순간 하루아침에 돌덩이나 시멘트조각이 돼서 빠드득거리며 굳어버린다니.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걸 보고 눈을 빛내며 저도 갖고 싶어요. 나눠주세요, 하고 쫓아올 수도 있는 거겠지. 그럼 조각을 떼어 나눠주는 거야. 어쩌면 그 사람 손에는 분명 별처럼 반짝반짝 빛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