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랴 Oct 30. 2022

무덤처럼 아래에 파묻혀있다

괜찮다고 말했던 건 그 말을 내게 해줄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괴로운 건지조차 납득시키지 않아도 되는 건 자신뿐이었다. 구태여 어떤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구구절절 논리 있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직접 느끼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이유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겪고 있는지 뭔지도 모를 것들이 감정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실타래같이 엉켜오는데 그걸 풀어헤쳐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는 걸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납득되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건 뭉뚱그려서 그냥 아픈 거라고, 그냥 너무 슬픈 거라고 말하다가, 어떤 날에는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문제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언젠가 들었던 누군가의 말처럼 아주 깊숙이 내려가다 보면 그래,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말이 마치 나보고 내 손으로 뱃속 깊이 손을 찔러 넣어서, 그렇게 낱낱이 파헤쳐서 슬픔의 장기들에 파묻혀 지금 당장 죽어버리라고 말하고 있는 걸로 들린다는 것도 모르겠지. 아마 자세한 사정 같은 건 모르니까 하는 말인 거 같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기억과 감정, 더 나아가서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그럴듯한 가짜 바닥을 지나 그 판자 같은 걸 걷어내면, 간신히 입구가 보인다. 그 입구 안에 있는 심층 아래 깊숙이 파묻혀있는 이유는, 아마 이유가 있어서 깊이, 아주 깊이 파묻어놓은 걸 거다. 파묻어놓은 건 나 자신이지만, 나는 이유 같은 건 모른다. 자신은 그것들을 하나같이 깊게 파서 묻어놓고는 흙을 덮은 채, 마지막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땅인양 손바닥으로 툭툭 쳐서 땅을 고르게 폈다. 맨바닥처럼 보이게끔 만드는 작업을 수도 없이 했었던 거 같다. 그리고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잊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다. 물론, 이유조차 잊었지만, 생존본능이 말한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그래서 나는 아무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툭 치듯이 가짜 바닥을 보면서 이건 뭐냐고 묻거든, 그냥이라고 말했다.

어쩌다가 마찬가지로 지나치던 사람이 사고로 인해 판자 안의 진짜 입구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것이 궁금하다며, 네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몹시도 궁금하다고 물어보면, 그거 입구 아니라고 말하면서 화제를 바꿨다. 누군가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가 궁금하다며 계속 캐물으면 본능처럼 화를 냈다. 그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나도 모른다고, 이건 아무 이유도 없고, 당신들이 없는 걸 보고 있다고 틀렸다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화를 냈다.


가끔씩이지만 깨닫는 순간이 온다. 이건 그러니까, 아마 방어기제, 이겠구나. 물끄러미 내가 하고 있는 짓들을 제삼자가 하는 일인 양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모르는 척하기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이건 무덤이니까. 절대로 파내서 따뜻한 땅 위로, 신선한 공기 밖으로 꺼내질 일은 다신 없을 거니까 그러니 나도, 정말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잡히지 않는 꿈을 좇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