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by 릴랴

눈앞에 보이는 건 끊임없이 이어져있는 길 옆에서 달리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은 그 길로 이어진 경쟁자처럼 보였다. 저 무수한 사람들은 모르겠고 양옆에 있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큼은 이겨야겠다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돌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 순간 도태된다고 생각했다. 등을 타고 피가 식어버리는 느낌과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너무 무서운 감각에 그대로 얼어붙어서 쓰러진 채로 고개도 들지도 못하고 바닥만을 쳐다보면서 한참 그러고 있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그제야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뭔가가 이상했다.



처음 보는 어리고 새로운 얼굴의 무수한 사람들이 몇 번이고 쌩쌩 달려 나가는 게 보였다. 그렇지만 새로운 얼굴들은 금방 익숙한 사람이 되어 다시 자신의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뿐이 아니었다. 자신이 넘어지기 전에 바로 옆을 달리던 사람들도 다시 자신의 옆을 지나쳤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운 감정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감정은 이게 뭔지 알고 싶은 제대로 파악하고 싶은 알 수 없는 감정이 그걸 유심히 관찰하게 만들었다.



앞만 보고 갈 때는 알 수 없는 게 보였다. 가는 길이 한참 자세히 관찰해야 겨우 알아챌 만큼 휘어져있었다. 너무 아득하게 길어서 그 형태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것은 원을 그리고 있었다. 방금 또 아는 얼굴이 지나갔다. 마치 이건 쳇바퀴같이 느껴졌다. 아무리 뛰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뛰는 거였다.




그래서 천천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일어나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숨이 넘어갈 것 같지만 결승전에 도달할 때까지만 빨리 뛰고 쉬겠다는 감정이 역력한 사람이 방금 내 옆을 뛰어서 멀어졌다. 저 사람은 곧 다시 내 뒤로 뛰어와서 나를 앞지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릴 것이다. 사실 나는 당신보다 앞서가고 있지 않다. 당신은 사실 아까 몇 번이나 날 지나쳤다. 이건 애초부터 자기 속도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이 길은 직선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같은 원을 걷고 레벨이 올라서 본인이 업그레이드가 되면 다시 다음 챕터의 원을 끊임없이 걷는 길이었다. 앞사람을 앞지른 듯이 보여도 이 길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기 때문에 뒤처진 듯 보이는 사람이 내 앞을 앞서 나가는 일도 발생한다. 지치지 않을 만큼 천천히 무던하게 걸어가다 보니까 종종 쓰러져 있는 사람도 보였다. 그리고 곧 다시 일어나서 언제 쓰러질지 알 수 없는 창백한 얼굴로 허겁지겁 뛰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가버린다. 왜냐면 그 사람은 이미 앞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이 길이 짧은 직선 코스가 아니라 거대한 원이고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고 아마 죽는 순간까지 나와 당신은 이 길을 걸을 것이고 당신은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나를 알아차리고 죽기 살기로 또 나를 앞질러나간다.


입이 달싹이며 그 사람을 향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이기거나 앞서 나가는 게 아니고 이게 거듭 반복되고 있을 뿐이라는 걸 납득이 되게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겨우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의 조금의 정보를 알려주더라도 이상한 궤변이나 늘어놓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서 나조차도 감당이 안되는데 힘들게 겨우 겨우 짜내서 말했는데도 그런 취급받고 싶지도 않고 사실은 나도 정확히 이게 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왜냐면 나는 이걸 방금 알아차린 사람일 뿐이라서 그냥 서럽고 괴로웠다.



그들을 애써 외면하고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걷자 개미나 작은 벌레들이 지나가는 게 보인다. 밟고 지나간 것도 보이지만 나라도 최대한 밟지 않고 가려고 조심해서 걸었다. 토끼가 조심히 뛰어오는 게 보였다. 중간중간에 새나 강아지, 고양이도 만났다. 가끔은 천천히 걷는 다리에 비비적거리다가 자기 갈 길 가버리고는 했다. 뛰거나 걷는 사람들의 발길질에 차이고 부딪혀서 다친 동물들도 보였다. 아마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볼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가고 있으니까.


가볍게 걷고 있으니까 가는 길에 장애물도 보였다. 나무도 보이고 전봇대도 보이고 바닥에 함정 구멍도 있다. 제대로 보고 가야 하는 걸 그제야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든 모르든 많이 부딪히고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부딪혀놓고도 기어 나오면서도 그게 뭔지도 몰랐을 거다. 그냥 걷거나 뛰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을 휘휘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 적이었을까. 맑은 하늘과 초록색의 싱그러운 나무에 달려있는 나뭇잎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끔씩 걷다가 지치면 내가 걷고 있는 길을 조심히 이탈해서 걷고 있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옆으로 빠져나와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앉아서 쉬었다. 숨이 쉬어졌다. 이런 게 있었구나. 점점 많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가끔 와서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조금 울었다. 처음에 우연히 돌에 걸려 넘어질 때만 해도 넘어져서 고개 숙인 채로 얼어붙어서 떨고 있을 때만 해도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았구나.”


그 순간을 돌이키면서 중얼거렸다. 입을 다시 한번 열고 혼잣말을 하기 시작하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작게 중얼거리는 마지막 소리가 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