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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알겠지만 덮어두는 게 나은 것들

by 릴랴

그냥 내 선택의 결과였다. 그러니까 나보다 더 위에 있고 더 많이 알고 더 나이가 많고 많을 걸 가졌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가끔 잊을 때가 많았다.


누군가가 내게 와서 그건 좀 아니지 않냐고 했을 때 바로 자신을 의심하고 ‘내 생각보다는 저 사람 말이 더 옳을 거야.’ 혹은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라는 식으로 스스로가 거기에 힘을 실어줬다.


사람들이 툭툭 던지고 가는 말들에 ‘그렇구나.’하고 일일이 하나하나 넘어가면서 내가 이렇게 된 것에 지금의 내 모습 중에 잘 안 된 부분을 돌아보면서 남 탓을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가만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냥 내가 넘어가지 않으면 되었을 일이었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겠지만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눈앞의 저 사람을 이해시켜야 된다고 달려들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그 사람들을 전부 이해시키고 납득시키고 인정받아야만 내 생각이 맞다는 강박증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때로는 모두가 맞다고 여기고 동의를 받고 납득시킨다 해도 생각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언젠가 지구가 둥근 것이 아닌 평평한 게 맞다고 생각했듯이. 생각이 달랐다면 굳이 둘 중 하나가 맞다고 정하려 들지 말고 저 사람이 맞으면 내가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은 채로 속으로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흔들리지 않았으면 됐을 일이고 굳이 길게 코멘트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었다. 그 사람이 맞고 틀리든 간에 그런 건 일단 한쪽에 치워두고 내가 뭘 추구하는지 그래서 뭘 바라는지 결국 어느 쪽으로 힘을 실어줄지는 항상 자신의 선택이었다. 어차피 갈 거라면 내가 하려는 일에 진행속도를 늦추는 이야기보다는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것에 힘이 되고 보탬이 되어주는 쪽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은가.


속마음을 전부 얘기하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전부 털어놓으면 내가 틀렸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날 알아봐 주지 않을 거라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그런 사람들만 곁에 있다고 시무룩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내가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조금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할 거라고 예상했고 속상할 걸 알았지만 아니길 바라서 굳이 물어보는 어리석은 일을 했다. 굳이 확정 짓지 않아도 물어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어떻게 될지 예상이 간다면 그 천을 굳이 걷어내서 확인하고 상처받을 이유가 있었을까. 그런데도 굳이 확인해 보고 ‘내가 오해한 걸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하는 그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계속 물어봤었다. 재차 확인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했던 남 탓과 환경 탓으로 이어졌다. 이제야 그런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내 행동이 눈에 보였고 그래서였다. 이제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니길 바라는 일은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상처받으면 상처받은 만큼 남탓하게 되어있었다. 괴로운 만큼 그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배로 상처받으니까 악을 쓰면서 다른 사람을 탓하게 됐었다. 그래서 굳이 그런 걸 알아차렸다고 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실수는 반사적으로라도 하지 않았다. 이유로는 트라우마였던 것도 있지만 그건 덮어두는 게 낫고 말조차 꺼내지 않는 편이 낫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판도라도 같았을 것이다. 그 안에 든 게 재앙덩어리가 한 무더기라는 걸 그녀가 알았다면 절대로 열어보지 않았을 거다. 여리지만 작고 강한 희망. 그렇지만 그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온 세상에 수많은 재앙이 들이닥치게 놔두는 도박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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