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개 같아. 난 실패작이야. 사람들 중에서 내가 제일 못하는 것 같아.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 계속해서 같은 실수만 여러 번 반복하고 있어. 단점 안 고쳐져. 밝은 척하는 것도 이제 지친다. 내가 뭘 잘했더라? 나만 허우적대는 것 같아. 아무도 나 안 좋아해. 사람이 너무 무서워. 이건 다 내 잘못이야.
사람들이 이 말을 못 해서 참다가 시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안에서 곪아가거나. 감춰야 하는 거였나? 참아지지 않고 불안이 들고 우울해도 그런 건 내색하지 말라고 속으로 삭이라고 했고 티를 내면 어리다고 했다. 그 말을 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왜 속이 문드러져가야 할까. 너 때문에 다른 사람도 우울해지니까 그런 피곤하고 괴로운 모습은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참으라고 했다. 그게 어른이라고. 하지만 그런 게 어른이라면 나는 나이가 훌쩍 지난 지금도 어른 같은 건 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말만 못 하고 있지,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우리는 이렇게 곪아가고 있었다는 걸 느낀다. 위로를 받거나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서 어떤 우울의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납득시키는 건 서로 힘든 일이 될 것이다. 느끼고 있는 감정만을 토로하고 상대의 감정도 들어보고 힘들었구나. 고생했다. 정도만 서로가 소통하면 좋겠다. 슬픔, 우울, 고통은 설명하고 납득시킬 필요가 없다. 설령 아무 이유가 없어도 이 감정들은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느낀 그대로의 감정과 얼마나 힘들었는지 슬펐는지 그 자체를 소통해 보자.
경험이나 느끼는 정도가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일은 상대에게는 별 거 아닌 일이 될 수 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되고 이해를 시키기 위해 서로 말이 길어지거나 필요이상의 다른 이의 험담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잘잘못을 따지면서 내가 맞냐 틀렸냐가 아니라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는지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서 무력하게 느꼈는지 또 서러웠던 부분이 뭐였는지 감정에 초점을 두고 말하면 풀리기도 하고 감정은 사람들이 크든 작든 비슷하게 느끼는 부분이 많아서 적당히 이야기해도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하기도 받기도 쉬웠다.
크게 많은 부분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지 않아도 감정은 모호하고 애매한 영역이기 때문에 서로가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세세한 경험과 있었던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감정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과 느꼈던 감정의 세세한 디테일과 내가 어떤 버튼이 눌렸는지를 탐색하고 소통하는 게 나았다. 생각해 보면 있었던 일들을 나열해서 내가 틀렸는지 그 사람들이 맞는지를 확인받는 것보다는 내가 고스란히 느꼈던 감정 그 자체를 이해받는 게 나았다.
일단 전자의 경우 상대가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 해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거였다. 달래주기 위해서 한 말이거나 진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들. 그리고 자신이 느끼기에 아무리 맞다고 해줘도 내가 틀린 건 아닌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불안감이 싹틀 수 있다. 그리고 상대가 네가 한 행동이 적절치 않았고 그건 네 탓이라고 말한다면 그게 사실이어도 기분은 나쁘다. 그리고 더 서러워질 가능성도 컸다. 자칫 말싸움으로 번지면 더 피곤해지고. 결국 무슨 대답을 들어도 그때뿐으로 만족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감정의 영역은 웬만하면 이해받기도 편하고 말하기도 편했다. 많이 늘어놓지 않고 감추고 싶은 부분은 감춰도 되고 굳이 다른 사람 험담을 해가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위치와 성향, 역량에 따라 같은 경험을 하기도 힘들겠지만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 해도 느끼는 건 천차만별이라,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들이 가진 경험과 가치관, 역할에 따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렇지만 감정에 관해서는 웬만하면 거의 비슷한 감정들을 느낀 적이 많았다. 보통은 누구나 기쁨이나 슬픔 정도는 느끼니까. 해당 감정을 그 자체로 이해받는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적당히 말하고 싶은 부분 위주로 말하다가 듣던 분의 비슷한 상황을 들어줄 충분한 시간도 생기고 서로 공감해 가면서 더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상호보완적인 경험을 하게 될 테다.
이런 말하기는 싫지만 시간도 훨씬 절약이 된다. 애초에 최대한 괴로운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고 홀가분해지는 게 목적이지 않은가. 그 관점에서 볼 때 큰 장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적는다. 결국은 그랬다. 누군가의 탓으로 말하는 대화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 상황과 들었던 말에 대해 받았던 자신이 느꼈던 감정만을 토로한다면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이 조금은 줄어들까. 그리고 그들의 소중한 시간도 절약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