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리멀리 Nov 17. 2018

11- 여행의 값

 여행이 여행 값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조바심이 날 때가 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산다. 그중 오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제 여행을 팔아서 먹고살거나 다시 여행을 떠난다. 여행으로 뭘 많이들 배우고 깨치는 모양이다. 다녀와서 글과 그림을 엮어 책을 내 보는 게 어떻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글을 팔아본 적도 없고 누가 살 만한 글재주도 없고 잘 팔리는 인사이더 감성도 없는 건 둘째 치고, 뭘 배우고 얼마나 젖어야 하는지 감이 없다. 삶과 죽음을 느낄 수 있다는 바라나시에서, 빈과 부의 간극을 보는 콜카타에서, 종교적이지 않지만 영적인 오로빌에서, 풍족하지만 가난한 시사아속에서도.


 조바심만 자꾸 난다. 더 알아야 한다고, 더 보고 더 써야지, 일관된 무언가는 어디에 있을까, 더 반짝여야지, 나는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푹 젖으면 좋겠는데. 썰물에 조개 구멍에서 맛조개가 혀 내밀고 짭짤한 맛만 보는 것 마냥 두 달이 지났다. 짜다.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여겼었다. 지금껏 재밌는 거라면 거절 않고 해 왔으니 계속 그러면 된다고. 노화가 시작된 지도 얼마 안 됐으니 어느 정도 진행될 때 까진 뭐 없이 살아도 된다고. 몇 해 전 혼자 몽골에 갔었다. 그리로 갔던 이유는 아무도 없는 밤의 초원에 혼자 똥을 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재밌는 몇 년을 보내면 그 기억으로 또 몇 년 살 테니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다.


 혹은 이런 생각도 했다. 사는 내내 어떻게 살 지 몰랐으니 여행이 끝나면 그 가닥은 좀 잡히지 않겠나, 숱한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살피면 뭘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어떻게 살 지 모르겠다. 다들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것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은 가난에, 어떤 사람은 자기 과시에, 어떤 사람은 육아에, 어떤 사람은 병에, 신앙에, 사랑에, 그렇게 있다. 무엇으로부터든 자유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것은 삶을 향한 고민의 여부와 관계가 없다.
나는 어디에 싸여 있는지, 어디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건지 조차 모르겠다. 갈수록 모르겠으니 조바심이 날 만 하다.


 지평선 위에 반구의 하늘이면 그저 됐었는데, 초원에 혼자 똥을 싸던 때보다 좀 더 노화했나. 밤이 짜다.


-18.8.26 인도, 바라나시


매거진의 이전글 10- 철수 씨가 배 위에서 해준 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