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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17. 2018

12- 어떤 곳을 본다는 건


 인도는 뭐든 시달리게 하는 곳이었다. 날씨와 사람과 똥과 개와 소와 오토바이와 여타 경적소리들을 비롯한 모든 것들에 시달렸다. 날씨는 더운데 비가 왔고 똥은 내 걷는 길 위에 오 미터당 하나씩 푸지게 널려 있었고 개와 소와 오토바이는 대부분의 길목을 막았다. 사람들은 참말보다 거짓말을 많이 했고 그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었다. 네팔에 가기로 했다. 버스로 스물두 시간의 이동이었다. 뒤로 조금 젖혀지는 의자에 앉아 밤을 보내고 새벽을 보내고 아침과 낮을 보내니 카트만두에 올 수 있었다.


 높은 곳이었다. 산속에 있는 큰 도시였고 색깔이 많았다. 붉은 벽돌로 만든 전통 집과 왕궁과 다양한 색의 건물과 옷과 장신구가 있었다. 여행자 거리의 호객행위는 소심한 편이었고 여전히 물건들의 정가는 알 수 없었다. 흥정할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참말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날씨는 선선했고 경적소리는 법으로 금지되어 덜 시끄러웠고 개들은 털이 많았다. 소와 똥은 별로 없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여긴 삼 년 전에 큰 지진을 겪은 곳이었다. 왕궁과 사원은 보수공사 중이고 균열이 간 집이 많았다. 무너진 집도 많았다. 그런 집에서도 긴 나무를 비스듬히 놓아 지탱해 사람이 살았다. 지진 즈음엔 왕정이 무너진 다음 3개월마다 집권당이 바뀌던 시절이었댔다. 3개월마다 주머니를 챙긴 사람들로 인해 네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인 여러 기금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었고, 10분의 1 정도가 겨우 이재민들을 위해 쓰였다고 그랬다. 그리고 몇 년 전까지도 사람들은 누굴 지지하느냐에 따라 총을 맞거나 맞지 않았다.
천재지변과 사람은 잔인하다. 


 80%가 힌두교 신자라고 하지만, 석가모니의 탄생지가 있는 나라이다 보니 두 종교 간의 경계가 애매하다. 라마 불교와 힌두교가 섞여 불교 성지에도 힌두교의 신상이 있다. 석가모니 또한 그들의 신 중 하나다. 사원에 가면 거울이 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신이 보는 나라고 했다. 나도 신이다.


 그들의 신은 숱하고 약하다. 길모퉁이에 있는 작은 돌도 신이고 바닥에 뿌려진 꽃가루도 신이다. 내가 온 줄 모르고 있으니 종을 쳐 알려야 한다. 그들의 경배는 집집마다 다르다. 각기 다른 전통 대로, 배운 대로, 내 신앙대로 신들을 경배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나의 신도 약하지만 그래도 종을 쳐야 내가 온 걸 알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나를 보고, 곁에 있을 터였다.


 어떤 곳을 본다는 건 공간과 내가 겹치는 일인 것 같다. 무너진 집과 죽어간 사람들과 큰 신앙과 작은 신들과 먹고 웃고 떠들고 핸드폰 게임하는 사람들의 공간에 손바닥처럼 나를 겹치면 그 사이에서 찹쌀 풀 같은 부끄러움과 슬픔과 재미 같은 것들이 나온다. 짐작해 보면 어떤 곳에 산다는 건 공간에 붙어 스미고 곧 녹는 일일 것 같은데, 모를 일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평생 여행하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러야겠다.
나중엔 어떤 곳에 터 잡고 오래 살아 보겠다고. 언제 또 번복할지 모르는 생각을 계속한다.


-18.9.15. 네팔, 카트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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