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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17. 2018

14- 세 명이 꾸린 한인회의 추석

*록빠 : Rogpa, 티벳어로 동반자라는 뜻. 티벳 난민 지원 센터이고 탁아소와 도서관, 수공예품 판매와 카페 운영 등을 하고 있다.


<세 명이 꾸린 한인회의 추석>


 비 오는 추석이었다. 그날이 추석인 걸 아는 사람은 셋이다. 나와 곰과 빼마. 나와 곰은 여행자고, 빼마는 이천 사 년에 록빠를 꾸렸고 지금껏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원랜 세 명의 한국인이 더 있어서 명절이나 연말이면 그렇게 넷이서 한인회를 열어 마니또나 선물 교환을 하곤 했다고 그랬다. 지금은 빼마 혼자뿐이라 곰과 나는 임시 회원으로 한인회의 추석을 맞았다.

 전망 좋은 피자집의 야외 테이블에서 달을 보려고 했는데 비가 와서 그럴 수가 없었다. 빼마는 우리를 데리고 록빠를 꾸리기 전부터 해 온 한국 밥집에 갔다. 그녀가 잡채와 김치전, 김치찌개를 내 오는 동안 나는 한자와 한글이 섞인 시집을 읽고 곰은 핸드폰 게임을 했다. 모르는 한자가 나올 때마다 곰에게 물었다. 곰은 읽어줄 수 있을 때도 있었고 모를 때도 있었다.  


 맵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빼마는 잘 들리는 또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목이 드러나는 짧은 머리와 작은 눈을 가졌고 갈색 스웨터가 잘 어울렸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서로 탐색할 이야기가 필요했다.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간 적이 있는지, 이곳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운영되는지, 어떤 가족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한참 말을 주고받았다.


 빼마는 새벽이 좋다고 했다. 예전엔 지는 해와 밤을 사랑했는데 지금은 뜨는 해와 새벽을 좋아한 댔다.
나도 새벽을 좋아해 보고 싶지만 아침잠은 무적이라서 도저히 못 이기겠다.


 빼마는 티벳 사람과 결혼했는데, 단순히 배우자가 티벳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여기서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이천팔 년의 이야길 해줬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중국 안에 살던 티벳 사람들은 시위를 하다 많이들 죽었다.
록빠가 있는 여기 맥그로드 간즈에서도 한 달 내내 시위가 있었댔다. 가게들은 문을 닫고 티벳의 사람들은 거리에 앉아 중국 타도를 외쳤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국기를 태우고 어떤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갑자기 종이 울렸다. 사람들이 주목하자 승려가 말했다.

 “쓰촨 성에 지진이 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중국을 위해 기도합시다.”

 거리는 조용해졌고 모두는 기도를 시작했다. 1분이었다. 중국 타도를 외치다 기도를 시작한 시간의 사이가 1분, 1분. 분노를 누른 게 아니었다. 그저 죽어간 사람과 중국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그 해와 그 순간이 빼마에겐 크다고 했다.

티벳 사람들도 나처럼 누굴 미워하고 욕하고 그런다. 아기들은 무척 씩씩해서 울다가 웃고 물고 할퀴고 때리고 그런다. 원숭이가 다가오면 짱돌을 집어 들기도 하고 그런 댔다(산속이라 야생 원숭이가 흔하다). 별날 것 없는 일상을 사는 나랑 닮은 사람들이다. 내 가족과 이웃을 죽인 사람들이 사는 나라와, 그 나라의 재난을 분리해 아파하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시위 현장에서, 1분 사이에.


 이상하게 또 울었다. 십 년 전 거기 있지도 않았는데 듣는 내내 슬펐고 감동했고 화났고 억울했고 아팠다. 어떤 감정을 선택할 수 없었다. 다 섞여서 뭔지 여적 모른다.


 그때쯤엔 비가 그쳤다.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집에 가다 밝은 달을 봤다. 빼마랑 같이는 아니었다.
그다음 날 빼마를 만나니 저녁에 피자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오솔길을 걷고 걸어서 전망 좋은 피자집에 도착했다. 설산이 멀리 보이고 노을 비친 붉은 구름이 가까이 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고 어제처럼 얘길 나눴다. 탐색적인 이야기보단 더 많은 경험의 공유가 오갔다. 회사에서 일하던 얘기, 록빠의 아기들 얘기, 맥그로드 간즈 동네 얘기 같은 걸 나눴다. 빼마가 문득 물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아끼는 게 뭐예요? 사람마다 다르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이동하는 경비를 아끼고 어떤 사람은 숙박비를 아끼는 그런 거요.”


 여행하면서 뭘 잘 안 포기하고 안 아끼는 편이었다. 고생해 모은 돈인 데다 그냥 좀, 크게 고생하고 아끼고 아껴서 뭘 해 내고 싶은 맘이 없다.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아껴서 적당히 편하게 있고 싶다. 몇 년 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책을 읽었다. 프로야구가 창단되던 즈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수다스러운 풍자로 가득한 얘기였다. 삼미 슈퍼스타즈, 지기만 하다가 없어진 프로야구팀의 이야길 하면서 다른 얘기도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문장들이 적혀 있는 그런 소설이었다. 나는 프로가 안 되고 싶었다.


 청소년기부터 대학 때까지 수업 때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뭘 힘들게 해 내서 끝까지 성공하고 뭐 극복하고 그런 걸 해 봐야 뭘 알게 된다는 그런 말이었다. 나는 그런 거 잘 못한다. 하나도 안 독하다.
프로가 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서 사는 일 같은 건 안 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할 만한 만큼 하면서 살고 싶다.


 내 얘길 들은 빼마는 내가 오래 살 것 같다고 했다.


 빼마와 얘기하는 건 편안했다. 숲에서 깜깜한 게 무서우면 불을 켜라고 했다. 굳이 무서운 데도 별을 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도시를 버거워하면서 생태를 힘들어하는 나를 모순이라고 했다. 빼마는 그냥 그런 거라고 했다.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어딘지 마음이 놓였다. 내 길 위엔 달빛이 놓였다. 투명히 빛나는 밤을 걸어 집에 왔다. 발이 놓인 곳에 마음도 놓인 건 오랜만이었다.


-18.9.27. 인도, 맥그로드 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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