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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17. 2018

16- 걱정

 사직동에 찻집이 하나 있다. 우리가 봉사했던 단체 록빠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거기 티벳 속담이 하나 적혀 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내가 걱정이 얼마나 많은가 하면, 길을 걷다가 아기를 안고 가는 사람을 보고 아기를 떨어뜨리는 상상을 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가스레인지에서 딱딱 소리가 나서 안절부절못하고 친구가 속상한 얘길 하면 진심을 담아 위로하는데, 그게 그에게 위로가 되는 위로일까 한참 고민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소용없는 걱정이나 별 걱정 아닌 일도 모조리 끌어모아 걱정한다.  


 맥그로드 간즈를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빼마가 하는 식당에 곰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얘기를 더 하고 싶어 졌다. 작은 와인을 두 병 사 가지고 걸었다. 별 아래였다. 윗마을의 문 닫은 가게 뒤에 앉으니 아랫마을 집들이 내려다 보였다. 불 켜진 창문들 하고 가로등들이 작게 보였다. 별과 닮아 있었다. 우린 꼭 별들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걱정에 관한 얘길 쏟았다. 나 말고 곰이 쏟았다. 내 걱정을 제일 많이 듣는 사람이었고, 그게 꽤 억울한 모양이었다. 빼마는 그럴 때 ‘떠오르는 생각은 나 자신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흘러가게 두자’라고 마음으로 입으로 되뇐다고 했다. 언젠가 따라 해 봤다. 떠오르는 생각이 늘 나를 잡아먹어서 문제였는데, 그건 나도 진실도 아닌 거라고 직시하니 떠오르는 생각은 작아졌다.


 더불어 그런 얘기도 했다. 사람마다 걱정의 양은 정해져 있어서, 걱정을 그만두자고 마음먹고 그만 두면 새로운 걱정이 마음을 채우는 거라고. 제각각 정해진 양을 따라서 걱정을 채운다는 그런. 어딘지 일리 있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을 텐데. 내 걱정의 양은 대체 얼마만큼으로 정해진 건지. 랩탑의 먼지 마개를 잃어버렸다. 랩탑의 구멍들 사이로 먼지가 모두 들어가 다른 걸 다 막아버리면 어쩌지. 떠오르는 생각은 나 자신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흘러가게 두자.


-18.11.2. 조지아, 트빌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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