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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17. 2018

17- 서로 사이

 둘 뿐이다. 오월 결혼하고부터 우린 쭉 둘 뿐이다. 이 사이는 얼마나 어디까지 괜찮을까. 어떤 지친 날엔 너의 질문과 손길과 발걸음이 전부 싫다. 어떤 들뜬 날엔 네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 퉁명스러워도 피곤하게 굴어도 떡진 머리를 하고 양치질을 안 해도, 아무래도 예쁘다.


 새벽까지 다툰 날 아침에 네가 끓여 준 레몬차를 마시고 울었다. 알다가도 모르겠어서 그랬다. 무척 사랑하지만 전처럼 뭐든 괜찮지 않다. 알 것 같아 시작했는데 알다가도 모르겠는 과정의 도돌이다. 번번이 그렇다. 네가 없는 모든 순간에 네가 그리웠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엔 그랬다. 그럼 지금은 안 그런 걸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서로의 어디까지 발 들일 수 있을까. 얼마만큼 싸우는 게 적정 선일까. 하도 싸우니 상처 주고 화해하는 게 신속하다. 바람직한 일인 것 같았는데 이것 또한 알다가도 모르겠다. 빠른 다툼에 따른 쉬운 화해가 익숙하고 낯설다. 그렇다고 다툼을 길게 늘이는 건 지칠 일이다. 화해를 길게 늘이는 것 또한 불편할 일이다. 둘은 얼마만큼 어떻게 같이 사는 게 적당할까.


 실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헷갈린다. 너의 한 숨소리 같은 게 왜 슬픈 지, 네가 화장실 문을 열어 두는 게 왜 화가 나는지, 침대 시트가 틀어진 걸 왜 참을 수 없는지. 서로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했는데 초라해지는 걸 견딜 수 없다. 분명 사람을 만나고 어디든 걷고 말하고 듣는 게 즐거웠는데 그 반대일 때가 잦다. 자연의 한가운데 있는 걸 행복하게 여기지만 더러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는 없다. 솔직해지자면 나는 내가 버겁다.


 더불어 너도 낯설다. 너를 겪는 일은 입체적이다. 네가 있는 힘껏 마음 상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사람들 만나는 걸 이만큼이나 좋아하는지도, 안 해도 될 말을 하는 실수가 잦은 사람인지도, 잠투정 부리는 얼굴이 세상 귀여운 사람인지도.


 다닐수록 제일 힘든 건 이십사 시간이다. 이십사 시간 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 다닐수록 제일 좋은 것도 비슷한 말로 설명이 된다. 이십사 시간 너와 같이 있는 것. 또 알다가도 모르겠다. 계속 그런 과정이다. 떠오르고 부서지고 자국을 남기고 잊히고 그런다.


 그래도 지금껏 여전히 다행히 곁이 좋다.


-18.11.4. 조지아, 트빌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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