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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25. 2018

18- 어려운 일

 결혼하기 한 달쯤 전이었다. 아빠가 오래 알고 지낸 어떤 사람하고 통화하는 걸 들었다. 다른 용건으로 전화를 걸었던 모양인데, 내 결혼 소식도 같이 전하고 있었다. 사위는 뭘 하냐는 물음에 “놀아,”라고 답해서 웃음이 나왔다. 결혼한 다음엔 뭘 하냐는 물음엔 “우리 딸이 그걸 하고 싶어 해,”라고 한 뒤 내 여행에 관해 얘길 했다. 서운함 섞인 그 말이 조금 울 것 같아서 방으로 들어왔었다.


 아빤 가끔 날개에 관해 말했었다. 그 얘길 할 땐 보통 진지했다. 난 진지한 아빠가 웃겨서 웃었지만 기억한다. 내가 자라길 도와주다가 언젠가 날개를 쫙 펼치고 싶어 하면 긴 말 않고 그냥 날려 보내주겠다고, 그렇게 얘기한 게 여러 번이었다. 나는 날개 같은 걸 펼칠 용기는 없지만 그 말을 기억하고 안심한다. 사랑을 이유로 한 방해가 없을 걸 믿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걸 하도록 마음에 자리를 두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곰이 그림 그리는 걸 방해 않고 두는 것도, 그가 잠시 어딜 다녀올 때 혼자 남을 용기를 내는 것도 그랬다. 하기 싫은 걸 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내가 가장 약하고 작을 때부터 나와 쭉 같이 지낸 엄마랑 아빠에겐 더했을 거다. 노는 애 둘이 결혼해 계속 노는 걸 두고 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테다. 아빠는 엄청 궁금하지만 묻지 않고 말하고 싶지만 안 말한다. 엄청 가끔 인생을 묻고 엄청 가끔만 꼰대처럼 군다. 나는 그걸 고마워한다.


 사랑했던 사람하고 헤어진 새벽에 아빠를 안고 해 뜰 때까지 울었던 날이 있다. 아빠는 나한테 봄처럼 다시 사랑이 올 거라고 말해줬다. 울음이 멈추고 한참 지나 어떤 가을에 사랑이 봄이 되어서 왔는데 나는 온지도 몰랐다. 그러더니 세상이 다 알게 마음하고 얼굴에 가득히 퍼졌다. 사랑은 되게 요란했다. 아빠 말이 맞았는데 아빤 우울해했다.


 그 새벽을 생각하고 또 안심한다. 어느 날 막 잘나 져서 날개를 힘껏 펼친 다음 한참을 날다가 다시 못나지거나 용기가 없어져서 날개 같은 건 접고 아빠한테 돌아와도 괜찮을 것 같다. 놀림은 되게 많이 당하겠지만.


 엄마랑 아빠가 그리운데, 만나고 며칠이면 또 싸울 거고 그럼 또 나한테 못됐다고 말할 거다. 그리고는 또 져줄 거다. 둘은 늘 그렇다. 부디 매일 나를 그리면서 건강히 나를 기다리길.


-18.11.24. 조지아, 트빌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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