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떼제 공동체, 침묵 피정 첫날
하늘에 구름이 꼈다. 밝은 별은 구름을 뚫고 반짝였고 안 그런 별은 흐릿했다. 그게 꼭 이불 같은 밤이었다. 말을 안 한다고 숨 죽일 것 까진 없었다. 알고 있는데도 숨이 무거웠다. 생각은 늘처럼 허락 없이 피어났다. 침묵 전, 저녁밥을 받으려고 기다릴 때였다. 낮에 잠시 인사했던 폴란드 애가 왔다. 그 애는 노트를 한 권 들고 있었다.
“우리 아빤 돌아가셨어. 여러 나라의 말로 아빠를 위한 기도를 적고 있어. 한국어로 우리 아빠를 위한 기도를 써 줄 수 있겠어?”
“응, 당연하지.”
“시간 있어?”
“응.”
생각해 둔 말이 없었다. 낯선 슬픔이었다. 조금 울 것 같아서 얼른 쓰기 시작했다. 중간에 한 번씩 멈추었지만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도문을 적었다. 그 애는 글 끝에 내 이름과 나라를 써 달라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그 애는 갔다.
떼제에선 줄곧 멜로디만 바꾸어 ‘키리에 엘레이손’을 노래했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문장이다. 뜻 또한 그랬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신을 포함해 누군가 나를 불쌍히 여기길 바란 적 없었고 숱하게 배웠어도 닿은 적 없었다. 마음이 일렁였다. 소나기처럼 갑자기 그랬다. 물이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제 각각의 이유로 슬퍼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땐 그 모든 슬픔이 벅차게 빛난다고 여겼었는데 지금은 안 그랬다. 살아 있는 모두가 불쌍했다.
제 각각의 이유로 불쌍한 모두에게, 슬픔을 들으시는 이가 있기를 바랐다. 내 손과 귀도 슬픔을 듣는 쪽으로 기울기를 더불어 바랐다. 영국에서 온 어떤 수사는 침묵을 하는 동안 아름다운 것을 보라고 했는데, 목구멍에 자꾸만 슬픔이 찼다.
검은 밤이었다.
투명한 밤이었다.
-19.1.31. 프랑스, 떼제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