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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Aug 03. 2019

26- 까미노; 나의 할 수 있는 만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말하고 생각해 왔다. 지나치게 열심히 하거나 애쓰지 말고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이 생각은 나를 줄곧 한량으로 만들었는데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넉넉하지만 가난한 마음으로 안빈낙도의 ‘안빈낙’ 만 하기.


 사는 동안 포기는 어렵지 않았다. 재미있지 않은 데엔 미련이 없는 편이었다. 꼭 해야만 하거나 충족해야 하는 것들이 과연 있을까 의심하고, 보통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걸은 지 며칠 되던 날이었을까. 내 오랜 가치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프면 안 걸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 싫었다. 발목이 퉁퉁 부어 피멍이 들어 있는 와중에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무척 낯설었다. 할 수 있는 만큼이란 뭘까. 나는 열심히 해 온 적이 있었나, 걸음 위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이란 얼마만큼인 걸까. 그동안의 나는 옳았을까. 어쩌면 정말 나는, 그저 게으른 걸지도 몰라. 여태껏 게으를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 왔던 걸지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아픈데 애써 걷는 이유와 고집이 어디에 있는 걸까. 안 그러면 좋겠지만 어쩌면,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계를 넘어서지 않겠다는 말을 만만한 만큼만 하겠다는 말로 여겨 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나온 시간들이 적잖이 창피해질 일이었다. 마음이 바빠졌다. 모르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만만하지 않은 이 길과 내 발이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아니 거길 지나서도 꼭 계속될 것 같아서.


 지친 몸으로 불안 위를 걸었다. 더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걸었지만 점점 불안해졌다. 일 년을 여행했는데, 나는 그 전과 다를까. 아무래도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한 걸어야지, 한계가 다가올 때 쉬어야지’하고 생각했다. 나를 향한 위로였다. 이 어른의 세계에서 실제로 나를 일으킬 유일한 사람, 나를 위로하면서 절뚝절뚝 걸었다.


 아직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더는 한량일 수 없을 것 같아 걱정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늘 거기서 거기일 순 없으니 어제라도, 오늘이라도 걸어야 했다. 그래 그게 그렇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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