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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Aug 03. 2019

27- 까미노; 나라도 그럴 것 같아서

 우린 주로 여섯이었다. 곰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노래하는 일이 직업인 존, 군에서 전역한 지 며칠 안 된 푸, 미국에서 공부하는 일본인 포뇨, 그리고 민과 나와 곰이 그 여섯이다.


 민은 끈질기고 정과 울음이 많은 사람이다. 곰이 발을 다쳐 혼자서 버스를 타도록 남겨두고 걷던 날이었다. 민의 무릎이 망가졌다.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픈 민은 카페에 남아 쉬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가방을 메고 출발하려는데 그가 울었다. 서러운 어깨가 들썩였다. 그래도 우린 떠났다. 나는 곰에게 민이 울었으니 곁에 있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모두는 말이 없었다. 내 몸이 괜찮음에 부채감을 느끼고 송구해서, 여기 온 이유들이 각자 가진 인생의 어떤 부분임을 알아서, 여기가 길 위라서. 그래서 조용했다. 걷지 못하는 순간 걷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지만 나라도 울 것 같아서 울음이 났다.


 우리는 한 동안 조용했고 곧 다시 말했다. 민은 끈질기고 씩씩하기 때문에 곧 괜찮아 질 거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먼저 위로했기 때문일까, 내가 아파 걸을 수 없던 날 꽤 의연했다. 그 새벽에 일어나 두 발로 섰을 때는 어제와 그제 그렇게 걸었으니 오늘은 걸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더 걸을 수 있겠다, 했다. 그 날의 나는 담담하고 용감했다.


 그 때부터는 끊임없이 나를 점검했다. 몸 사리지 않는 데에 어차피 별로 안 익숙해서 점검이 쉬운 편이었다. 내 몸은 매일 조금씩은 무리할 수 있었다. 새벽마다 땀띠 난 발목을 동여 매고 상처들에 테이프를 감았다. 조금씩 억지로 걸었다.


 혼자 못 걸은 날도 있다. 일곱 시 반 쯤 되면 숙소 전체에 나 혼자만 남는다. 슬슬 일어나 뭐든 타고 조용히 이동한다. 배낭을 메고 절뚝이며 도착하면 쓸쓸하다. 씻으려니 땀이 안 나서 귀찮고 먹으려니 안 움직여 배도 안 고프다. 다들 어디쯤 왔을까, 차를 타면 이렇게 빠른데. 이렇게 쉬운데. 왜 걷지, 왜 걷고 싶지. 투명한 물음이 머리를 통과한다. 어쩔 땐 불투명한 물음이 머리를 채운다. 사는 게 전부 무모하단 생각에 착잡하고 외로워진다. 남은 생이 전부 위험천만하게 느껴져 한숨도 막힌다. 그 다음 늘어지게 어두운 미래를 두려워한다.


 아무래도 걸은 날이 안 걸은 날보다 훨씬 낫다. 걸은 날에는 쉬이 잠들 수 있지만 안 걸은 날에는 복잡하고 찝찝하게 인스타그램을 보다 잠든다. 무엇보다 둘의 차이는 샤워의 질과 맥주 맛에서 가장 크게 벌어진다.


 여섯 명 중 세 명은 못 걸을 만큼 아픈 날이 이따금 있었다. 아픈 세 명은 못 걷는 날의 마음을 보다 잘 헤아릴 수 있었다. 나라도 그럴 것 같은 마음에 위로하고 위로 받고 그랬다.


 용기 내고 포기하는 걸 자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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