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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Oct 01. 2019

29- 편지글

여태 나에게 속아 온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거의 모두를 속이며 살아온 멀리입니다. 진실을 알리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여겨 왔지만, 돌이켜 보니 사실은 필요했다는 생각에 이제와 편지를 씁니다. 아무한테도 안 한 얘길 쓰고 싶습니다. 오늘 읽은 책에, 글쓰기는 솔직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 책을 쓴 사람은 이만교 작가입니다. 무척 단호하게, 내 의식과 무의식이 다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절대로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어떤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고슴도치’라는 인물이 소원을 들어주는 방에 들어가서 벼락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끝내 자살했대요. 사실 그 방에 들어간 이유는 아픈 동생을 낫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슴도치의 무의식 속 욕망은 벼락부자가 되는 거였어요. 나는 내 욕망이 투명하길 바랍니다. 모두를 속이고서는 계속 쓸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진실을 바로잡고자 엉망인 나를 솔직히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가난하더라도 연극이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가난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필수 불가결한 아르바이트가 아닌데도 일하고 돈을 벌어 옷도 사고 밥도 먹고 혼자 다 가졌습니다. 사실은 가난이 뭔지도 모르면서 가난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했어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사실을 알기 무서워합니다. 인정은 받고 싶지만 나를 직시하고 싶진 않아서 요리조리 피하길 몇 년째입니다. 곧 진실을 알게 되겠지요. 그럼 나는 포기할까요. 절대 안 그러고 싶어요.


 글이 쓰고 싶다고도 말했습니다. 내 글을 칭찬하고 응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서 의심하면서도 뿌듯해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쭉 써야겠다고 말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쓸 줄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배우지도 않았고, 뭘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남의 글을 평가하고 우습게 여겼어요. 내가 안 써서 그렇지 쓰면 잘 쓴다고도 생각했어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늘 내가 충분히 해 온 것처럼 말합니다만 딱히 애쓴 적도 없습니다. 그러고 싶지만 고작 넷플릭스가 너무 좋아서 잘 안 됩니다.


 사실 나는 돈과 인기와 아름다움을 열망하는 사람입니다. 잠자기 전이나, 딴생각이 필요할 때면 아주 아름다운 외모와 여러 예술적 재능과 큰 재력을 가진 나를 상상합니다. 실제의 나를 못 미더워하고 아쉬워하고 미워합니다. 상상 속에 숨으면 잠시 내가 나인 걸 잊어버립니다. 이 상상은 내가 열한 살 먹었을 무렵에 시작되었습니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이하나라는 애를 만나고부터였어요. 그 애는 눈이 아주 크고 얼굴이 까맸어요. 늘 예쁜 옷을 입고 다녔고요. 그 애는 내 인생 처음으로 나한테 분홍색 꽃무늬가 있는 콘택트렌즈를 보여준 적도 있습니다. 그 애보다 예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내가 그 애보다 똑똑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요. 이하나는 최연제라는 애를 좋아했어요. 샤기컷을 하고 목소리가 걸걸한 애였습니다. 최연제가 이하나 말고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만 생각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 남성 아이가 나를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애가 나를 좋아하면, “그럴 줄 몰랐어.” 라며 안 그런 척했어요. 진짜로 그럴 줄 몰랐을 때도 있었지만요.


 어쩌면 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글 쓰고 싶은 나를 꿈꾸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쩌죠, 그렇게까지 후지고 싶진 않은데. 글 쓰는 나와 글쓰기를 욕망하고 싶습니다. 가난을 모르면서 가난을 말하거나, 애쓰지도 않고 애쓴 척하거나 후진 나를 감추려고 말 못 할 상상만 하기 싫습니다.


 여태 나에게 속아 오셔서 억울하실 것 같습니다. 진실한 나는 무척 못나서 앞으로 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솔직해봤습니다. 한 번도 안 애써봐서 애쓰는 일이 잘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 보고 싶습니다. 내가 엉망이어서 당신들의 기분도 엉망일까요. 아니면 우습고 고소할까요. 사실 내 진실을 알린 다음 듣고 싶은 말은 ‘다 그러고 살아’입니다. 내가 지나치게 후지지 않아서 안심하고 싶어요. 아무도 안 이러고 살면 어쩌지, 걱정합니다.


 나를 드러내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합니다. 이왕이면 다음부터는 더 잘 쓸 수 있게 되길 바라요. 모두 미안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욕망하는 것을 일치시키고 싶습니다. 진실된 내 말을 잘 쓰고, 게다가 남의 말도 잘 쓰는 사람이 되면 넷플릭스 앞에서 쉬이 무너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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