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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Oct 01. 2019

30- 까미노;  지나기 위해 지나는

 다시없을 일이라고 직감할 때가 있다. 분명 지나갈 것들, 지나기 위해 지나는 걸음이나 시간. 내 모든 여행이 그랬을까. 아마 맞는 듯하다. 까미노는 유독 그런 직감이 깊고 잦았던 곳이었다. 정이 들면 그랬다. 누구랑 오래 스치게 되면. 길에서 우리들은 그런 사이였다. 걷는 동안, 약 한 달 넘는 시간을 대부분 함께하면서 정드는. 우린 전부 동양인이었는데 같이 있음에 유난히 큰 의미를 두는 편이었다.


 가파른 산을 내내 올라 꼭대기 근처 마을에서 묵은 날이었다. 이튿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볼 생각으로 해가 지기 전 아직 밝을 무렵부터 잠들어야 했다. 모두 누웠다. 누군가는 일어나 불을 꺼야 했는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귀찮은 일로 치면 세 손 가락 안에 들 만큼 귀찮기 때문이었다. 몇 초 간 정적이었다. 친구 한 명이 불을 껐다. 그는 푸 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대체로 욕심이 없고 양보가 생활화된 대학생이었다. 에어팟을 잃어버려도 침착하게 포기할 줄 알았는데, 우린 전부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라 번번이 그가 가진 마음의 여유에 감탄했다. 그의 얼굴은 멋진 수염으로 덮였고 걸음은 빨랐다. 무척 건강해 걷는 내내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또 어이없는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우리들은 그 때문에 자주 웃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는 불을 껐다가 다시 불을 켰다. “아침이야, 일어날 시간이야.” 몹시 이상하고 어이없고 웃겨서 우린 잘 자라는 인사도 안 하고 다 같이 웃었다.


 문득 우리가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다시는 같은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그럴 일은 무척 드물겠지, 사는 동안 우리는 다시 오늘과 같지 않을 거야, 생각했다. 우리는 잠시 동고동락하는 간이 식구였다. 우리는 서로 스치는 사람들임을 알았다. 애틋하고 아쉬웠다.


 그립고 아쉬워서 울 지도 모를 시간을 지난다. 이미 다른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뭐가 그리울지 어림잡을 수 있다. 게다가 걷기 시작했다는 말의 뜻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기 위해서라는 말을 뜻했고 그 말은 그리워하기 위해서 혹은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의 지금은 지나버릴 텐데, 우리는 헤어져 버릴 텐데, 결국 돌아올 수 없어버릴 텐데. 모든 것이 부질없어질 법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부질없지 않았다. 아직 부여하지 못한 의미들과 여태 지나온, 지나갈 모든 의미들이 나도 모르는 기억들에 달라붙어 맴돌았다. 꼭 여러 개의 행성과 위성처럼. 나는 우주가 되었다. 나의 행성과 위성들이 내 미래의 회상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흔들지 않았다. 인생 말고 이 작은 여행에 깊숙이 손을 넣어 헤집었다. 나 또한 헤집혔다. 그동안 잠깐 빛났다. 꼭 멀리서 본 은하 처럼. 빛을 공유하고 어딘지 엉켜있지만 사실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잠깐, 우리는 각자이면서 서로였다. 


 그런 잠깐이 있는 날이면 오후 하늘이 시원했다. 내 마음은 서늘한 쪽빛이었다. 어깨가 찌릿하게 좋았다. 노을이 질 땐 그 마음이 솜사탕 색깔이 되기도 했다. 그리울 미래를 그리워했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는 너무 젊어서 뭐든 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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