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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Oct 03. 2019

31- 까미노; 어쩔 수 없게도

 곰은 자주 불안해했다. 돈 때문이었다. 사는 내내 가난했어서 어쩌다 돈이 조금 있을 때도 쪼들렸다. 그렇지만 그에게 로망과 낭만은 돈보다 중요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꼭 세계일주를 떠나리라, 그의 오랜 꿈이었다. 스물세 살 때 돈 한 푼 없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기억이 그 꿈에 일조했다. 누굴 만나든 여행이 화제가 될 때면 산티아고에 관해 오래 말했다. 그러다 사 년 전에 나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순례길을 꼭 함께 걷자며 앞날의 낭만을 보장했다. 운명 같이 내 오랜 꿈도 세계일주였다.


 둘이서 돈을 모았다. 안 먹고 안 입고 안 버려 가면서 일 년 넘게 저축했다. 빠듯하게 아시아와 유럽을 다닐 수 있는 돈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통장에 이천 만 원이 모인 걸 봤다. 우리의 여행은 그 돈으로 뭘 사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껴 가며 모은 돈을 쓰기만 하니 신이 났는데 나만 그랬다. 곰은 돈을 쓸 때면 늘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비싸고 맛 좋은 음식을 먹을 때도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도 누구에게 줄 선물을 살 때도 한 편으로 찜찜해했다. 여행하는 동안 걱정은 곰의 몫이었고 내 역할은 소비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각자의 몫이 끝까지 지켜지는 법은 없었다. 걱정은 나에게도 옮겨 붙었다. 함께 돈 걱정을 할 때쯤, 잔고가 비었다. 한국에 돌아가기로 했다. 마지막 여행지를 산티아고 순례길로 정했다. 팔백 킬로미터를 걷는 코스였다. 한 달 여의 시간을 걷는 데에 쓰니 지난 십삼 개월을 정리하기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틀린 판단이었다. 하나도 안 적당했다. 뭘 먹을지, 얼마나 잘 지, 얼마나 걸을지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너무 많이 걸어서 몸에 겨를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르막길은 숨이 차고 그늘이 없는 평지는 더웠다. 특히나 내리막길은 물리적 고통을 가져왔다. 걸음마다 내 몸과 배낭의 무게가 발목과 무릎에 충격을 줬다. 아무리 아파도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 의지로 나를 질질 끌면서 못 걸을 길을 억지로 걸은 다음, 오후 네 시쯤 생맥주를 마시면서 지친 몸을 겨우 끌어올렸다.


 그렇게 걸은 지 이십오일쯤 되는 날이었다. 전날 산 정상에 거의 다 와서 짐을 풀었기 때문에 그날 출발한 곳은 거의 산 꼭대기 직전이었다. 꼭대기를 지나면 이십 킬로미터 가까이 되는 내리막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철의 십자가라는 오랜 명소를 지나는데, 그곳에서는 꼭 일출을 봐야 한댔다. 그 일을 위해서 해뜨기 전에 일어나 이도 닦고 똥도 싸고 옷도 갈아입었다. 발이 아프지 않게 바셀린을 손에 묻혀 발 곳곳을 문질렀다. 물집이 생겨 실로 꿰어 놓은 곳들은 작은 테이프로 감싸고 꼭 물집이 생길 것 같은 데에도 그렇게 했다. 같은 이유로 아주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그 위에 발목 보호대도 찼다. 내 아픔은 빠짐없이 나의 몫이기 때문에 꼼꼼해야만 했다. 신발까지 다 신었는데 무방비 상태인 발가락 한 개에 통증이 느껴졌다. 몹시 짜증 났지만 다시 신과 보호대와 양말을 벗고 밴드를 하나 더 붙였다.


 깜깜한 산길을 성실히 걸으니 멀리 십자가가 보였다. 돌무더기 위에 긴 십자가가 있었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해 뜨는 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길을 떠나기 전에 곰이 알려준 게 있었다. 철의 십자가에 가면 들고 다녔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그래서 순례자들은 그 크기만 한 돌을 들고 와서 내려놓고 간다고. 그래서 아주아주 큰 돌을 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돌이 너무 무거우면 걸을 수가 없으니 의미를 기념하면서 작은 돌을 들고 걷기로 했다. 조약돌을 하나씩 주워 가방에 넣었다.


 숱한 사람들이 거기에 짐을 내려놓고 쉬다 떠났다. 그런 지는 칠백 년도 더 되었다. 나는 그 돌무더기 위에 섰다. 나한테 짐은 지나치게 많은데, 그 근간이 되는 짐이 뭘까. 무얼 내려놓으면 내가 보다 잘 쉴 수 있을까, 하다 나의 오랜 게으름을 돌로 내려놓았다. 그것은 여태 내게 딱 달라붙어 뜯어내고 싶었지만 자주 내 핑계가 되어주었다. 어쩔 때는 짐이었다가 어쩔 때는 아니었다. 이제 게으름을 짐이라고만 부르기로 했다. 내려놓은 다음엔 다시는 게으르지 않을까, 일단은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무릎을 굽혀 내려놓았다.


 그다음 앉을만한 곳을 찾아 남이 내려놓은 돌, 그 짐들 위에서 쉬었다. 곰은 다른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다. 큰 돌을 찾아 매직으로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그리는 중이었다. 다들 그의 재능을 보면서 들떴다. 오랜 명소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기대만 못하다며 실망한 애도 있었다. 사람들은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는 어디에서 왔는지 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곰은 그림을 완성했다.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두었다. 나는 누구와도 안 섞였다. 내가 내려놓은 짐과 남이 내려놓은 짐 위에서 조용히 울었다. 머물고 떠나는 모든 이들의 짐이 모여 언덕이 되었다. 짐을 덜고 덜으니 그것 조차 쉴 곳으로 만들어졌다.


 그 시간 즈음부터 해가 비추기 시작했다. 바람이 돌들에 닿고 있었다. 바람이 꼭 빛을 안고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내가 다른 이의 욕심과 짐 위에서 쉬듯 다른 이들도 나의 짐 위에서 쉴 수 있기를, 내 내려놓은 짐 위에 하나님이 바람으로 닿아 주시기를. 내가 또 게으르지 않도록 내 돌, 짐 위에서 쉬는 이들을 기억하게 하시기를. 고마운 순례자들, 내가 당신들이 가졌다가 내려놓은 짐 위에서 기도하고 쉬고 잠시 하나님을 뵙고 가니 고맙다고. 부디 내가 오늘을 오래 기억하길 바란다고.


 저들이 내려놓은 것이 기쁨이나 아쉬움이나 다른 어떤 것일 때도 있었다. 그래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그 위에서 쉬었다.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 인생을 오로지 나만이 살 수 있도록 설계한 잔인한 하나님이, 서러워 엉엉 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나한테 그 돌무더기를 보여줬다. 당신이 오랜 짐들을 전부 안고 바람으로 기억하니 꼭 여기서 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 때문에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데, 그게 버거워 서러웠는데 이렇게 푹 쉬니 다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울음이 자꾸 났다.


 잔고에 얼마가 있는지, 한국에 가면 어떻게 지내야 할지, 나는 뭐가 될지. 이는 전부 내 몫이었으나 나는 쉬었고 여기는 길이기 때문에 걸어야 했다. 게으름을 버렸다고 해서 당장에 부지런해질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걱정을 멀리 하기 어렵지 않았다. 다시 오늘은 조금 무리할 수 있었다. 짜증 나게도 나는 모든 힘을 잃지 않았다. 걸음을 얻은 듯, 다시 살 수밖에 없었다.


 해가 다 떴다. 뜨겁기 전에 산 아랫마을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곰은 내가 우는 줄도 모르고 나를 사진으로 남기겠다면서 자꾸 여기저기 서 보라고 했다. 나는 안 운 척 요래 저래 포즈를 취하면서 귀엽게 굴었다. 오래 잔잔하려고 했는데 곰이 너무 좋아서 금세 즐거워졌다. 좋아하는 노래를 작게 재생하고 사뿐사뿐 걸었다. 몸이 가벼웠다. 


 어쩔 수 없게도, 끔찍한 내리막길이 우글대는 산자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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