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통과]
책을 읽다가 한 번 집어던졌다. 주인공 제야가 강해지고 싶을 때마다 내 가슴께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제야는 자주 강해지고 싶어 했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책을 집어던졌다. 몹시 화가 나기도 했고 통증이 자꾸만 거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책을 주워 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제야가 내 세상에도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제야는 매일 일기를 쓰면서 크고 있었다. 동생 제니와 사촌 승호와 같이 놀면서 자라고 있었다. 당숙은 제야를 성폭행했다. 경찰과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과 그 외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야를 믿지 않았다. 제야는 강해지고 싶어 했지만 무너졌다. 그리고 강릉으로 떠나 엄마 친구인 강릉 이모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진짜 어른인 강릉 이모는 제야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며 사과했고, 제야가 살아낼 수 있게 같이 버텨 주었다. 제야는 대학도 가고 여행도 간다. 그렇지만 그 날 이후부터 그 날은 제야와 항상 함께였다. 다른 생각을 할 때도 한쪽에서는 그 날 생각을 했다. 제야는 그 날을 떨쳐내지 않기로 한다. 성폭행을 당한 제야도 제야이니까. 삶은 그대로 삶이니까. 제야는 미로를 통과하려면 왼쪽 벽에 손을 대고 걸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미로의 출구를 찾기보다 왼쪽 벽에 손을 대고 일어선 다음, 걷는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당숙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사는 세상에도 제야는 많이 산다. 제야의 말을 묻어버리거나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그의 말을 안 믿는 사람들도 많이 산다. 성폭행 가해자인 당숙과 같은 사람들도 많이 산다.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나는 제야를 모를 수 없다. 이렇게까지 현실인 이야기를 읽을 때면 무어라 적어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다. 그저 가슴께에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울먹거린다. 화가 난다.
지난해 런던에서 한인 민박의 스텝으로 일할 때였다. 우연히 같은 동네의 한 대학교에서 서지현 검사님과 함께 미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회가 마련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나는 우산을 쓰고 지도 어플을 보면서 그리로 갔다. 대담회가 끝나갈 무렵, 포스트잇에 질문을 적어 제출하면 검사님이 보고 답변하는 순서가 있었다. 질문이 뽑힌 사람에게는 빵과 장미를 선물해 주었다. 나는 물었다. “기억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평행세계를 떠올린다고 했다. 그 일을 겪지 않은 내가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라고. 그 말을 한 다음 울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빵과 장미를 받았다. 코 훌쩍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내 마음은 겪어본 적 없는 따듯함으로 가득 찼다. 여태 살면서, 나를 울면서 안은 사람이나 여럿이 함께 울었던 경험은 내게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마음이 잘 안 믿어졌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 구면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나는 완전히 이해받았다. 나도 저들을 이해했다. ‘이런 경험을 연대라고 부르는 건가?’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그 대담회 이후 검사님에게 보냈던 이메일이 생각났다. 나는 메일함을 뒤졌다. 내가 보낸 메일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검사님, 나는 강한 사람이고 싶었어요.
아직도 숱한 밤 무너지지만, 나는 나를 강하다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 놀랐다. 지금은 좀처럼 하지 않는 생각이지만 나와 제야는 같은 생각을 했다. 바람대로 제야와 나는 강하다. 우리는 왼손을 벽에 대고 걷는다. 우리 둘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바람을 나와 제야만이 가지지 않을 것은 무척 분명하다. 나와 제야가 이미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숱한 사람들과 이미, 그리고 이제야 연결되었다. 나는 그들을 모를 수 없다.
모르지 않는 것 말고 무언가를 더 하고 싶다. 나는 가해자에게 침을 뱉는 제니가 되고 싶다. 어쩔 때는 강릉 이모가 되고 싶다. 어쩔 때는 제야가 짚은 왼쪽 벽이, 오른손으로 잡을 수 있게 내미는 손이, 되고 싶다. 이해하고 이해받기로 한다. 미로를 통과하기로 한다. 나를 완전히 이해받고 당신들을 이해하는 경험을 늘려 가 보기로 한다. 마음 한 구석이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