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안간힘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더할 것 없이 정성스러운 반찬과 같았다. 인간에의 사랑이 밥이라면 책의 이야기들은 반찬처럼 정갈하게 자리해 제 맛을 냈다. 저자 김초엽은 인간을 매우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무어라고 적어야 이 소설들이 머릿속에서 흩어져 버리지 않게 잘 묶어둘 수 있을까, 이대로 사라지게 둘 수 없다. 머릿속 한편에 저장해 두고 싶다. 읽어치우기 아깝다. 나는 내가 이 이야기들을 쉬이 잊지 않도록 적어서 저장할 테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마을’에 사는 데이지는 지구로 떠난 순례자들이 왜 전부 돌아오지 않는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을 뿐. 데이지는 마을을 만든 지구인 릴리 다우드나에 관해 알게 된다. 릴리는 마을을 만든 사람이다. 지구에서는 이민자의 딸이었고 얼굴에 큰 얼룩을 가졌다. 지구에서 이민자, 장애인 혹은 남과 다른 외모는 차별과 배제와 낙인의 대상이 된다.
릴리는 이를 벗어나 완벽한 사람들만 존재하는 꿈을 꾼다. 바이오 해커 ‘디엔’이 된다. 배아를 완벽하게 디자인하여 판매한다. 그러나 이는 점차 지구의 계급을 더욱 확실하고 공고하게 만든다. 병 없이 아름다움을 가지고 오래 살 수 있도록 디자인된 신인류와 그렇지 않은 인류로 계급이 나뉘어 버린다. 릴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텐데 정반대의 결과가 드러나자 그만두고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다. 차별과 배제와 낙인과 불행 없는 세계인 ‘마을’을 만든다. 모두가 장애나 질병이나 외모에 얼룩이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차별 없이 행복한 마을.
하지만 열여덟 살이 되어 지구로 떠난 순례자들은 마을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눌러앉아 버리곤 했다. 사랑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거나,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에 함께 맞서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불행 속에서 미소를 띨 수 있는 곳이라서 그들은 자꾸만 돌아오지 않았다.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나는 조금 의아했다. 마을과 같은 세상에 살다가 왜 지구로 오는 건지. 그래도, 그래도 그곳이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다. 마을이 아무렴 더 나아도 여기 남을 만하겠다. 이해했다. 차별의 요소를 모조리 삭제해버리기 전에, 그것들을 느리게 헤쳐나가는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이따금 지구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죽어가는 이들을 볼 때, 차별과 혐오와 전쟁과 폭력과 질병 앞에서 무력할 때, 착취당하는 비인간동물이 유머로 소비당할 때, 살아 있음이 송구하고 죄스러울 때. 떠날 수 있다면 떠나고 싶을 만큼 나도 지구가 끔찍하다. 엉망인 이 지구를 증오한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지구를 사랑한다. 김초엽은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을 이유로 지구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지만 내가 여기 남을 이유는 한 사람보다 훨씬 많다. 그건 내가 지구인이라서 그렇다. 아무튼 나는 지구에 남은 ‘마을’ 사람들과 지구가 궁금해 무턱대고 우주선을 탄 데이지를 이해한다.
<스펙트럼>
희진은 우주 한복판에서 조난당한 뒤 알 수 없는 행성에서 40년을 산다. 철저하게 낯선 그 행성의 생명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아무런 기계도 없이 그저 희진의 감각만으로 그들을 마주한다. 인간은 완벽한 타자를 이해할 수 있나. 그곳의 지성 생명체 루이는 희진보다 훨씬 힘이 세다. 손에 멍이 든 희진을 보고 그다음부터는 손을 살살 쥐었다. 서로를 점점 이해한다. 그들 문화에 따라 죽음 이후에 새로운 루이가 와도 그들의 연속성을 이해하고 믿고 싶어 한다.
희진은 기적처럼 지구에 돌아왔고 그들의 색채 언어를 연구한다. 루이가 희진을 두고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라고 기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희진의 미소를 따라 입 주위를 일그러뜨렸던 루이는 희진이 놀랍고 아름다워 그랬을까.
철저히 알 수 없는 존재를 생각해봤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이해하는 일. 내가 모르는 언어를 쓰는 나라에 가면 나와 타자가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무척 한정되곤 한다. 손짓과 발짓과 손가락질을 오랜 시간 해야 고작 인사를 나눌 수 있으니까. 그래도 지구에서는 미소의 의미 정도는 통일되어 있다. 인류가 듣지 못하는 주파수로 이루어진 언어는 없다. 하지만 루이의 행성은 모조리 낯설다. 들을 수조차 없는 목소리와 분간할 수조차 없는 색채 언어가 존재한다.
희진은 그들에게 연약하고 작은 생명체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다. 갖가지 기계와 여러 사람과 큰 우주선과 함께 그곳에 갔다면 희진은 루이를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구에서만 살기 때문에 철저한 이해 불가능성에 관해서는 상상 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를 이해하거나 내가 이해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내가 사랑하는 연약하고 작은 생명체들. 강하지 않아서 이해받고 이해하는 존재들. 약하고 무능한 채로 태어난 나와 나를 이해하는 이들. 아무것도 쥔 것 없는 손으로, 맨몸으로 다가와 내가 이해한 존재들. 루이와 희진처럼 철저하게 모르지는 않지만 저들만큼이나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들을 떠올렸다.
<공생 가설>
광진구의 ‘뇌의 해석 연구소’에서 분석한 아기들의 울음은 단순하지 않다. 아기들은 철학적인 물음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들은 오래전 사라진 행성에서 온 외계의 존재들이다. 신생아부터 일곱 살 사이 인간의 뇌 속에서 산다. 물성이 없는 이 존재들은 우리와 공생하며 수 만년을 살아왔다. 그들은 사랑, 윤리, 이타심과 같은 가치를 가르치며 우리와 유아기를 함께 보내고 떠난다. 류드밀라는 일곱 살 이후에도 그들이 그리워하는 그들의 고향을 그림과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알 수 없는 향수를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그 사랑과 윤리와 이타심을 인간성이라고 불러왔다. 인간이 가진 고유한 성질이라고 믿어왔는데 사실은 외계에서 온 것이었다. 어쩌면 고유한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존재에서 오는 것들로 구성되는 일이 고유한 어떤 것들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고, 나는 김초엽의 놀라운 상상을 통해서 물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먼 우주인 슬렌포니아로 가기 위해 백 년이 넘는 시간을 폐쇄된 정류장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하염없이 기다린다. 오랜 시간 이동하기 위하여 인간을 얼리는 기술을 연구하던 안나는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인류가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고차원 웜홀 통로를 발견하고 나서, 더 이상 그의 기술을 이용해 이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연구는 지속되었고 그의 가족들은 슬렌포니아로 먼저 떠났다. 연구가 끝나면 안나 또한 그리로 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안나는 슬렌포니아로 가는 마지막 우주선을 타지 못했다. 그 날은 연구 발표날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웜홀 통로가 없으므로, 오랜 시간이 걸려서 슬렌포니아까지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운항을 중단한 것이다. 그렇게 중단된 항로는 꽤 많았다. 하지만 새로 열린 통로가 더 많아서 중단은 쉽게 잊혔다. 그는 계속 이렇게 우주에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다시 운항할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그는 기다린다. 정류장을 청소하고 주스를 마시고 자기를 얼렸다 깨우면서 시간을 보낸다. 정거장 폐기를 앞두고 안나는 작고 낡은 그의 우주선을 타고 슬렌포니아로 떠난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갈 수 없을 만큼 멀다는 것을 알지만 가야 할 곳을 아는 자는 떠날 수밖에 없다. 그 확신은 그가 언젠가 도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겨준다. 그저 갓 떠난 뒷모습인데, 연약하고 연약한 늙은 사람인데 그가 가진 빛나는 확신은 자꾸만 사실을 뒤집으려 한다.
슬렌포니아를 잊을 수 없어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출발해 버린 안나를 볼 때 나는 가슴 어딘가가 저리다. 모두 잊었어도 그것을 못 잊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으니까. 망각 뒤에서 망각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아니까. 안나는 안나의 모습을 하고 그들을 설명한다. 당신들이 잊어도 나는 그리로 가겠다고, 외로움의 총합을 계속 늘려가도 나는 잊을 수 없으니 가야 할 곳으로 가겠다고. 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리는 쪽에 있을까. 그곳은 너무 머니 이제 그만 지구로 돌아가 자기 삶을 살라고 말하는 쪽에 있을까. 아니면 예견된 죽음을 알지만 그와는 정반대인 확신을 가지고 떠나는 안나의 편에 있을까. 그의 여정이 유의미한지 무의미한지를 따지고 싶지 않다. 뒤로 물러나지 않고 그 속에 있고 싶다. 무서워도 안나의 편에 있고 싶은데. 늘어나는 외로움의 총합에서 일 정도는 빼고 싶은데. 나는 지금 어느 편에 있는 걸까.
<감정의 물성>
우울, 설렘, 공포, 침착, 증오 등의 감정이 비누, 향초, 초콜릿과 같이 물성을 가진 형태로 판매된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믿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나는 감정이 주는 감각이 있다고 여긴다. 화가 나면 배가 뜨거워지고 슬프면 가슴께에 압박이 느껴지듯 감정에는 감각이 있다. 하지만 물성을 띨 때는 어떨까. 내가 가지고 싶은 옷을 사듯이 감정을 사서 소유할 수 있다면.
보현과 정하는 사랑하는 사이다. 보현에게는 복잡한 사정이 있고, 자꾸만 우울체를 사 모은다. 정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보현은 정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우울체가 주는 환각이 끝나면 진짜 고통이 보현에게 들어올 거라고도 말한다. 정하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보현은 정하를 떠난다. 정하는 감정의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보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보현이 떠난 자리에서 그를 이해하는 정하는 하나하나 살펴본다. 냄새와 공기와 소리와 벽지, 탁자, 현관문을 느낀다. 나는 사람이 감정을 가질 수 없기를 바란다. 느끼거나 흘려보내고 그저 기록해 두기를 바란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옷을 사고 욕구를 충족하듯 감정에의 소유를 욕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만일 내가 감정의 물성을 가지고 있다면, 잠식되지 않고 그것을 조절하고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어도 나를 지배할 것이다. 손에 쥔 것이 아님에도 손에 쥐었다고 믿고 싶을 테다. 감정에 쉬이 휩쓸리고 흠뻑 빠져버리는 나는 감정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런 나에게 이 제품들은 너무 딱이다.
그냥 지금 이대로 사람들을 이해하고 이해받고 떠나보내고 남겨지고 감정의 감각을 섬세히 느끼고 싶다.
<관내분실>
엄마를 이해하는 이야기다. 살면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은 지민과 은하는 모녀지간이다. 지민은 임신을 했다. 은하는 삼 년 전에 죽었다. 은하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우울증으로 인해 지민을 평생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하가 죽은 뒤에도 지민은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봉안당은 현재 도서관이라고 불린다. 고유한 인덱스를 가진 마인드가 도서관에 보관된다. 마인드는 고인의 시냅스 패턴을 스캔해 재현하는데, 사람들은 마인드에 접속해 고인과 대화한다. 고인의 자아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저 데이터라고 여기기도 한다. 지민은 임신을 하자 은하와 대화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도서관에 찾아오지만 아빠인 현욱이 인덱스를 삭제해 버린 뒤였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인덱스 삭제는 은하의 유언이었다.
지민은 은하의 마인드에 접속하고 싶어 졌다. 방법이 있었다. 은하를 고유하게 특정하는 물건을 찾아오면, 그것에 반응하는 시냅스 패턴을 입력하여 검색하기로 한다. 지민은 은하의 유품을 찾는다. 하지만 그가 가진 유품 중 그 어떤 것도 은하를 고유하게 특정하는 물건들이 없었다. 은하는 전부 집 안의 엄마였다. 가지고 있는 것 중 마땅한 물건이 없자 지민은 현욱을 찾아간다. 현욱의 집에서 그런 물건을 찾는다. 지민을 낳기 전, 은하가 표지를 디자인한 책이 그것이다. 그 책을 이용해 지민은 은하의 마인드를 찾는다. 그리고 은하에게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는 서사를 좋아한다.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를 이해하게 되고 그의 방식을 알아차리게 되고 뜨거운 화해를 하게 되는 그런 서사. 우리는 그 대상이 엄마가 아니어도 서로를 치열하게 이해할 수는 있지만, 대상이 엄마일 때 이해의 깊이는 남다르게 깊다고 느낀다. 지민은 은하의 인덱스를 찾으면서 자기의 인덱스를 잃지 않겠다, 얼마나 다짐했을까. 뱃속 아이를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할 때 엄마를 얼마나 이해하고 미워했을까. 지민과 은하가 부둥켜안고 서로를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은하는 죽음 뒤에 이해받았다.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은하는 진작에 이해받아야 했다.
그러면 나는, 나를 필사적으로 사랑한 내 엄마 해란을 이해하나. 나는 그의 인덱스를 알고 있나. 자신할 수 없다.
현욱이 인덱스를 지우기 전부터, 그러니까 은하는 죽기 전부터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자기 방도 없는 집에서 김은하 같지 않은 사람으로 살았다. 사랑받지도 사랑하지도 않은 채로. 은하의 세상은 그가 그의 이름을 분실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가끔 나를 내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안사람, 곰의 아내 등으로 설명된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다짐한다. 나는 나로 살아야지, 이름을 잊지 말아야지. <관내분실>을 읽은 다음엔 다짐을 하나 더 하려고 한다. 해란의 이름을 잊지 말아야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출산을 한 중년의 비혼모 동양인 여성 재경이 터널을 넘어 미지의 우주로 넘어갈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다가 사라졌다. 개조된 사이보그의 몸으로 캡슐에 탑승해야 하는데 재경은 심해로 갔다. 가윤은 재경이 사라졌다는 것을 모른 채로 그를 동경하여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그 또한 사이보그가 된다. 그는 사라지지 않고 터널을 통과하여 우주 저편을 본다.
비혼모 동양인 우주비행사에게 닿는 냉대의 시선과 차별적 언론 보도가 쏟아지는 와중에 재경은 그냥 다 벗어버리고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어떻게 해도 똑같을 테니 전부 져버린 것이다. 재경이 떠안은 압박 덕에 가윤은 조금은 더 괜찮았다.
가윤과 재경은 대안가족이다. 유진과 재경은 비혼모 커뮤니티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함께 산다. 딸들인 가윤과 서희 또한 자매처럼 자란다. 언론은 재경과 가윤이 진짜 혈육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이 많다. 진짜 혈육이라면 가윤도 재경처럼 그만둘 거라고 한다.
‘진짜’ 혈육이 아니거나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기준을 생각한다. 재경의 잘못은 재경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잘못이 되었다. 국제적 망신이 된 여자 우주 비행사는 그의 잘못이 아닌 것들도 짊어졌다. 그는 심해 어딘가를 유영하고 홀로 해방을 누리고 있겠지만 남겨진 이들은 여기 남아 계속 난도질을 당한다. 하지만 가윤은 재경 때문에 우주 저편을 처음으로 본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결함이 결함으로 정의되지 않을 때까지 결함 있는 사람들은 포기하거나 도전할 것이다.
이 책의 처음과 끝은 정상 범주에 관한 이야기다. 차별과 편견의 시선으로 엉켜있는 미래의 지구는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별로 안 다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는 함께 붙잡고 세상에 맞서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끔찍하고 황홀한 이 지구를 소개한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는 포기하고 도전하고 난도질당하고 꿈을 꾸는 사람들이 동경하고 체념하고 이해하는 이야기다. 책은 처음 더불어 살기로 결심하고 나서부터 치열하게 서로를 이해한다. 나와 비슷한 존재부터 시작해서 철저히 다른 존재까지,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책 속 일곱 가지 이야기는 전부 눈부시지만 각기 다른 빛깔이다. 나는 여기 나온 존재들을 쉬이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적어 두기로 한다. 데이지, 희진, 류드밀라, 안나, 보현, 지민과 은하, 재경과 가윤을 빠르게 잊고 싶지 않다. 김초엽의 상상 속에서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품고 이해받고 이해하는 과정이 먹먹하고 짜릿하다.